[자연의 향기속으로 20선]<12>꽃-윤후명의 식물이야기

  • 입력 2006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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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저세상으로 갔을 때, 그 병원 앞 화단에 영춘화 가지가 버려져 있는 걸 주워 가지고 와서 물에 담가 뿌리를 내렸다. 그것이 해를 넘기고 4월 초가 되자 꽃을 피웠다.―본문 중에서》

“본질을 잃을 위기감에 빠질 때 나는 꽃의 세계로 간다.”

식물에 대한 실용적인 정보가 가득한 ‘꽃-윤후명의 식물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저자의 의식이 어떻게 꽃과 더불어 깊어졌는지 읽어내는 재미도 적지 않다. 그가 살아낸 삶의 편린들과 꽃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가 조화롭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토종 식물과 희귀식물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꽃에 관한 잘못된 지식도 수정할 수 있다. 나 자신만 해도 해마다 봄이면 들뜬 마음으로 모란을 보러 집을 나서곤 하는데, 언젠가 모란꽃에는 향기가 없다는 잘못된 정보가 머릿속에 입력된 후로는 한 번도 모란꽃 향기에 취해 보지 못했다. 이 책에 따르면 모란꽃이야말로 무척이나 향기가 강하다고 하는데, 관념이란 능동적으로 마주하는 대상의 그 강한 향기도 맡지 못할 만큼 무서운 것이다. 또한 이 책에 따르면, 우리의 제비꽃 하나만도 무려 44종이나 되고 전 세계적으로는 400종이 넘는다고 하니, 그 절묘한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자의 무딘 시선이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도 집 뜰에다 온갖 종류의 식물을 구해 심어 놓고 정성껏 키우고 있는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숱하게 끼니를 거르면서도 꽃에 대한 순정을 지켜 왔다. 생활이 힘들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야만 했던 고된 삶의 수많은 순간에도 구황식물의 뿌리를 몸에 지니고 다녔을 정도로 꽃을 향한 그의 열망은 식을 줄 몰랐다. 아직도 그는 마당이 좀 더 있으면 감자밭을 일궈 감자꽃을 통해 고향을 보고 싶다고 한다. 이 책이야 말로 그 열망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슬람의 마호메트도 말했다지 않은가. “빵 두 조각을 가진 자는, 하나는 수선화와 바꾸어라. 빵은 육체의 양식이지만 수선화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내면에서 주체할 수 없는 동물적 욕망의 회오리가 느껴질 때, 식물적 세계로 근접하며 뿌리를 튼튼히 하라’는 등의 잔잔한 메시지를 간직한 ‘꽃’으로 인해 독자의 메말랐던 마음에도 순식간에 봄꽃의 에너지가 번져 나간다. 그것은 오랜 세월을 치르며 저자가 얻어낸 값진 결과물을 가장 쉽게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언젠가부터 세워 놓은 공식에 따르면 그리움이란 외로움에서 움트는 감정이다. 외로움이 없으면 그리움도 없다. 외로움은 자기 존재의 밑바닥까지 가서 자기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아무도 함께하는 사람은 없다. 삶이 적막하다 못해 무섭기조차 하다. 누구를 향해 구원의 손을 뻗쳐야 한다. 그리움이 움트는 순간이다.”

극한의 외로움과 대면하는 자의 깨어 있는 의식처럼 꽃도 지고지순한 과정을 통해 어느 순간 피어난다. 그 존재가치를 아는 자에게 꽃은 단순히 인간의 삶을 장식하는 데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 성찰을 위한 대상이다. 저자가 꽃을 통해 자신의 삶까지도 진솔하게 풀어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자신의 이성으로는 통제되지 않는 동물성에 절망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조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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