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 디지털 문화재 잠든 역사를 깨운다

  • 입력 2006년 3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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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씨는 디지털로 복원된 문화재가 ‘제2의 문화재’로 불리는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는 고구려 장수왕이 건립한 안학궁(오른쪽) 등 유실된 문화재를 철저한 고증을 통해 복원했다. 신원건 기자
박진호 씨는 디지털로 복원된 문화재가 ‘제2의 문화재’로 불리는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는 고구려 장수왕이 건립한 안학궁(오른쪽) 등 유실된 문화재를 철저한 고증을 통해 복원했다. 신원건 기자
높이 82m인 황룡사 9층 목탑에 올라가 본다. 8세기 당시 세계 4대 도시의 하나였던 서라벌(경주)의 화려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잠시 후 백제 무령왕릉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 본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거나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문화재를 체험 가능하게 한 것은 디지털 복원의 힘이다.

문화재 디지털 복원 전문가인 박진호(34·동국대 불교대학원 문화재콘텐츠학과 강사) 씨는 3차원으로 복원된 디지털 문화재를 ‘제2의 문화재’라고 부른다. 박 씨는 최근 ‘황룡사, 세계의 중심을 꿈꾸다’(수막새)를 펴냈다. 그동안 자신이 복원한 황룡사와 9층 목탑, 불국사와 석굴암, 미륵사 9층 석탑, 고구려의 정궁인 안학궁, 고구려 안악3호분, 백제 무령왕릉, 신라의 왕경(王京·왕궁이 있는 도심) 등의 복원된 사진과 복원 과정의 에피소드, 이들 문화재에 대한 체계적 설명을 담았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박 씨는 1999년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영상관 작업에 참가하면서 디지털 복원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과거를 재현하는 디지털 복원을 퇴행적이거나 의미 없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영화 ‘왕의 남자’에 등장하는 한양 풍경과 경복궁 근정전도 모두 디지털로 복원된 겁니다.”

디지털로 복원한 황룡사 9층 목탑.

그는 디지털 복원의 교육적, 산업적 가치가 풍부하다고 강조한다.

“경남 진주박물관이 2004년 말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의 일주일간을 담은 복원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학생들이 진주성 전투의 전모를 생생하게 보며 임진왜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 한 변의 길이가 622m나 되는 고구려 장수왕의 안학궁을 보면서 웅장한 기상을 느낄 수도 있고요. 책에는 한 줄만 언급되는 역사를 가상체험을 통해 생생한 실제처럼 다가가게 하는 거죠.”

문화재의 실물 복원에도 디지털 복원은 유용한 수단이 된다.

“황룡사 9층 목탑을 복원할 때 한번 잘못 만들면 다시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먼저 디지털로 복원하면 이에 따라 정교하게 복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최근 사극 영화에서 컴퓨터그래픽이 많이 쓰이면서 산업적 규모도 날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학자들이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로마 시내를 완벽하게 재현한 것처럼 영화, 게임 등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

디지털 복원은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지식과 고증 노력, 기술을 겸비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정밀 복원을 위한 자료가 부족합니다. 따라서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제기하는 정설을 따라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디지털 복원은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면 언제든지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꿈은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의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이다.

“디지털 복원의 강국인 영국은 그리스, 일본은 중국 문화재를 주로 복원하고 있는데 실크로드 문명은 아직 아무도 손을 안 댄 블루오션입니다. 특히 로마제국이나 한나라에 비견되는 페르시아 왕국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복원해보는 것이 꿈입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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