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곤, 그는 진정한 코미디언이었다

  • 입력 2006년 3월 12일 16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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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故김형곤자료사진 동아일보
코미디언 故김형곤
자료사진 동아일보
"잘 돼야 될 텐데…."

엄혹했던 1980년대, 정치권에 대한 조롱과 풍자를 담은 이런 '대담한' 유행어를 전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게 만들면서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던 개그맨 김형곤 씨. 그는 시청자에게 통쾌한 웃음을 선물했지만, 그 웃음 뒤에 숨은 '인간 김형곤'의 삶은 어두운 골짜기가 많았다.

1960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김 씨는 동국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0년 TBC 개그콘테스트 은상 수상과 함께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는 1987년 KBS '유머 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에 출연하면서 인생의 정점에 올랐다.

이 코너에서 '비룡그룹' 회장 역을 맡은 김 씨는 "잘 돼야 될 텐데" "잘될 턱이 있나"와 같은 유행어를 간단한 제스처와 함께 퍼뜨리면서 실망스런 정치권에 대한 걱정과 절망을 동시에 표출했다. 이 코너의 인기로 그는 '시사 코미디의 일인자'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그해 'KBS 코미디대상'을 비롯한 각종 코미디 상을 휩쓸었다.

이후 KBS '시사토크 코미디 웃음 한마당'과 '김형곤 쇼'를 진행하면서 토크쇼 형식을 도입한 시사풍자 코미디도 선보였다. 그는 성인대상 코미디 전문 클럽인 '코미디클럽'을 경영하면서 사업적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가파르게 상승하던 김 씨의 인생 곡선은 그가 그토록 비판했던 정치권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으면서 꺾이기 시작했다. 1999년 자민련 명예총재 특별보좌역으로 정치 입문한 그는 2000년 무소속으로 서울 성동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하면서 모았던 재산을 대부분 날렸다. 처음부터 출마를 반대했던 아내와는 선거 패배 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혼에 이르렀다.

가정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당시 만 여섯 살이던 아들 도헌 군을 영국으로 유학 보낸 뒤 '기러기 아빠'로 살아왔다. 김 씨는 최근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이혼하고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 때문에 국내에 둘 수가 없었다. 결국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를 유학 보냈다. 아들이 보고 싶기도 하지만 아비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면서 "선거에서 깨지고 이혼하고 어린자식을 남의 나라로 떠나보낸 2,3년이 내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 씨의 매니저는 "유학 중인 아들과 매일 통화할 정도로 아들을 챙기며 지극 정성인 아버지였다"고 전했다.

'회장님…' 코너에서 김 씨와 함께 출연하면서 인연을 쌓아온 개그맨 박승대 씨는 "정치 입문 실패와 이혼으로 힘들 때에도 오히려 '사람은 누구나 실패한다. 나는 실패를 코미디로 승화시키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코미디를 사랑한 인물"이라고 김 씨를 추억했다.

한때 체중이 120kg이었던 그는 다이어트로 30kg을 감량해 화제를 모았고, 이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이어트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1인 스탠딩 코미디 '엔돌핀 코드'로 인기를 모았으며 공연수익금으로 백혈병 소아암 어린이들을 돕는 자선 활동을 펼쳤다. 또 최근 KBS2 '폭소클럽'으로 방송 출연을 재개하면서 성공적으로 재기한 그는 이달 30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교민을 대상으로 한 코미디 쇼를 열기로 예정돼 있었다.

"사람은 제조일자(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유통기한(건강)이 중요한 것"이라면서 의욕적으로 제2의 인생을 꿈꾸던 김 씨. 돌연한 그의 죽음은 그래서 그를 사랑했던 시청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시신은 1999년 가톨릭대 의과대학에서 시신기증 등록증을 발급받았던 생전 김 씨의 지론에 따라 기증된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영결식은 13일 오전 7시.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故김형곤씨가 생전에 운영했던 싸이월드
자료사진 동아일보


그는 진정한 코미디언이었다

그는 진정한 코미디언이었다.

“세상에 웃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인간이 동물에 비해 우월한 이유도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려고 애쓰는 것도 결국 웃고 살기 위한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돈 버는 데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웃지 못하고 산다."

시사풍자 코미디의 1인자였던 ‘영원한 우리들의 회장님’ 코미디언 김형곤(46)이 11일 오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그는 죽기 전날인 10일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페이지에 글을 남겨 누리꾼(네티즌)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미니홈피 '형곤 생각' 코너에 ‘대한민국이 웃는 그날까지’란 제목의 글을 통해 웃음에 대한 철학을 띄우며 웃음을 잃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양산하는 방송사도 질책했다.

그는 “웃음은 우리에게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웃음 곁으로 자주 가야 한다. 드라마 주인공이 '오늘 죽네, 내일 죽네' 하는 걸 보며 스트레스 받지 말고 코미디나 시트콤 같은 걸 보며 웃는 사람들이 현명하다”며 “친구를 만나도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게' '새로운 조크 하나 가르쳐줄까'라며 즐겁게 해주는 엔도르핀이 팍팍 도는 사람을 만나라”고 조언했다.

이 글에서 그는 방송사에 대해 “시청자를 배려하지 않고 시청률에 의존한 현 방송 행태에 분노한다, 나는 25년 동안 방송에 몸담아온 방송인이지만 우리나라 방송에 불만이 있다. 사람은 모름지기 잠자리가 편해야 한다. 그러나 밤 10~12시에 코미디나 시트콤 같은 밝고 즐거운 방송을 해주면 웃으며 잠들텐데, 현재 그 시간대엔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잠들기 전 강도, 강간, 사기꾼, 양아치, 패륜 등의 사건을 보며 잠든다”고 밝혔다

그는 또 "'국민의 편안한 잠자리를 보장하라' '악몽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라'는 피켓을 들고 방송국 앞에서 일인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며 "10시대에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고정 편성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 밤 10시 넘어서는 정치인들 얼굴이 절대 방송에 안 나오게 해야 한다"고 글을 맺었다.

이글 아래에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누리꾼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다음은 고 김형곤씨의 싸이월드홈피(http://minihp.cyworld.nate.com/pims/main/pims_main.asp?tid=36107119)에 올려진 '대한민국이 웃는 그날까지'의 전문이다

◆대한민국이 웃는 그날까지 (김형곤 2006.03.10 09:07)

온국민이 웃다가 잠들게 하라

세상에 웃는 것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한 이유도 웃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돈을 벌려고 애쓰는 이유가 뭔가? 결국 웃고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돈 버는 데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웃지 못하고 산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웃음은 우리에게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웃음 곁으로 자주 가야 한다. 예를 들어 TV를 볼때도 괜히 드라마 주인공이 암에걸려 오늘 죽네, 내일 죽네 이런걸 보면서 괜히 스트레스 받고 그러지 말고, 그저 코미디나 시투콤 같은 걸 보면서 낄낄대고 웃는 그런사람들이 현명한 사람들이다.

친구를 만나도 만날때마다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게. 새로 자온 조크하나 가르쳐 줄까?" 하며 나를 웃겨주고 즐겁게 해주는 친구를 자꾸 만나야지, 만날때마다 "너 돈 좀 가진거 없냐?" 하는 이런 인간들은 될 수 있으면 만나지 말아야 한다.

보기만 해도 즐겁고 엔돌핀이 팍팍 도는 그런 사람들만 만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데 왜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들을 만나느라 시간을 보내는가 말이다.

나는 25년동안 방송에 몸담아온 방송인의 한 사람 이지만 우리나라 방송에 불만이 있다. 사람은 모름지기 잠자리가 편해야 한다.

편안한 잠자리에서 상쾌한 내일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잠드는 시간이 대략 밤 10시부터 12시 사이일 텐데, 그때TV에서 밝고 즐거운 방송을 해주면 좀 좋안가 말이다. 코미디나 시트콤 같은 재미있는 프로를 하면 그런 프로를 보다가 웃다가 잠이 들텐데...

현재 그 시간대에 나오는 프로들은 대부분 <그것이 알고 싶다>, <뉴스추적>, <추적 60분> 이런 고발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잠자리에 들기 전 강도, 강간, 사기꾼, 양아치, 패륜, 불륜, 조폭, 살인 등등의 사건들을 보며 잠이 든다. 그러니 우리 국민들의 잠자리는 언제나 뒤숭숭하다. 낮에도 끊임없는 사건과 사고, 비리소식에 스트레스가 많은데, 잠자리에서까지 꼭 그런 프로를 방송해 온 국민을 악몽에 시달리게 하는 이유가 무언가 말이다. 시청자를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시청률에만 의존하는 현 방송의 형태에 정말 난 분노를 느낀다.

'국민들의 편안한 잠자리를 보장하라.!, '악몽으로 부터 국민을 보호하라!' 이런 피켓을 들고 방송국 앞에서 일인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언제나 9시대에 뉴스를 고정편성 하듯이 10시대 에는 코미디프로를 고정편성 해야 한다. 그래서 온 국민이 웃다가 잠이들게 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

밤 10시 넘어서는 정치인들 얼굴이 절대 방송에 안나오게 해야한다. 한밤에 TV에 나온 정치인들 때문에 잠을 설치고, 가위 눌리는 그런 국민들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시체실에 세 구의 시체가 들어왔다. 그런데 시체가 모두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검시관이 물었다.

"아니, 시체들이 왜 웃는 얼굴이오?"

"첫번째 시체는 1억원짜리 복권에 당첨되서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입니다. 두번째도 심장마비 인데, 자기 자식이 1등 했다고 충격 받아서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자 검시관이 물었다.

"세번째 사람은?""이 사람은 벼락을 맞았습니다."

"벼락을 맞는데 왜 웃지?"

"사진 찍는 줄 알고 그랬답니다."

박선홍기자 su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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