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2월 3일.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에 취임했다. 그는 PLO를 무장투쟁 조직으로 바꾸고 항공기 공중납치, 뮌헨 올림픽 대학살 같은 테러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1974년 10월 아랍 정상들은 PLO를 팔레스타인 유일 대표로 인정했다. 11월 유엔 총회에서 아라파트는 “나는 권총과 올리브나무 가지를 함께 갖고 다닌다. 나의 손에서 올리브나무 가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권총은 전쟁, 올리브는 평화였다.
1987년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4명이 이스라엘 트럭에 치여 숨지자 인티파다(민중봉기)가 일어났다. 이스라엘군 전차를 향해 돌을 던지는 소년의 모습이 세계인의 동정심을 자극했고 때맞춰 아라파트는 올리브 가지를 들었다. 1988년 유엔 총회에서 테러 포기와 이스라엘의 생존권 인정을 발표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1993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오슬로 평화협정을 맺고 이듬해엔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아라파트를 ‘배신자’라고 했다.
아라파트는 1996년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에 선출됐다. 2000년엔 2차 인티파다가 일어났다. 수십 년 동안 아라파트를 제거하기 위해 진력한 ‘6일전쟁’(1967년)의 영웅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2001년 말 라말라의 아라파트 집무실에 포격을 해 대면서 “밖으로 나오면 생명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위협했다. 하릴없이 연금돼 있던 아라파트는 핼쑥한 모습으로 2004년 10월 29일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프랑스의 병원으로 향했으나 11월 11일 숨을 거뒀다.
그가 사망한 후 샤론 총리도 ‘올리브 가지’를 들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철수 등을 밀어붙였으나 지난달 5일 혼수상태에 빠졌다. 아라파트의 후계자 마무드 아바스가 이끈 파타는 지난달 25일의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평화 노선을 비난해 온 하마스에 패했다. 이래저래 중동 평화가 가물가물하고 있다.
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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