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다윈은 어떻게 프로이트에게 낚시를 가르쳤는가?

  • 입력 2005년 10월 22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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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어떻게 프로이트에게 낚시를 가르쳤는가?/폴 퀸네트 지음·이순희 옮김/436쪽·1만3800원·바다출판사

키우던 개들은 죽고, 아이들은 떠나가고, 주말이 아닌 평일에 낚시를 시작할 때 진짜 인생은 시작된다….

‘못 말리는 낚시꾼’에 대한 일화는 많다. 결혼식 날 상심에 빠진 신랑 이야기도 그저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신랑은 결혼식장 계단에서 자신을 기다려야 할 신부가 방수장화를 신고 플라이를 던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신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쏘아붙인다.

“내가 말했잖아? 해치(곤충이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변화하는 과정. 물고기의 입질이 잦아 낚시하기 좋은 시기다) 후에 하자고, 해치 후에!”

‘낚시하는 인간, 호모사피엔스.’

임상심리학자이자 50년 경험의 베테랑 낚시꾼인 저자에게 낚시와 물고기로 통하지 않는 비유는 없다. 물에서 뭍으로 진화를 거쳐 낚시하는 종족으로 이어져 온 인간 진화의 수수께끼를 훑으며 낚시할 때의 기쁨과 해방감, 기대감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 책에는 낚시꾼의 열정과 자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생물학, 심리학, 인간의 진화에 대한 지식이 씨줄과 날줄처럼 얼키설키 엮여 있다.

저자는 물가에서 고기만 낚는 게 아니다. 성(性) 사랑 희망 이혼 불안 공포 자살과 같은 현대인을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입질을 시도하며,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숙연한 인생의 진실을 낚아챈다.

한 낚시꾼이 호숫가에 앉아 있다. 그는 커다란 배스(우럭의 일종)가 생명 없는 달이 내뿜는 빛에 의지해 수련 잎을 찾아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순간 첨벙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입에 개구리를 낚아챈 배스가 유유히 사라진다. 낚시꾼은 생각에 잠긴다.

“개구리가 배스의 영양원이라면 우리는 모기의 영양원이다. 잠자리와 쏙독새가 모기의 포식자라면 우리는 배스의 포식자다. 절벽 너머 코요테가 들쥐의 포식자라면 들쥐는 애벌레의 포식자다….”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해질녘에 거대한 생명의 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우주먼지에서 ‘낚시하는’ 우주먼지로 발전해 오는 동안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우리 모두는 같은 강물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배스 낚시에 쓰려고 지렁이를 잡지만 내일은 지렁이가 우리를 잡을지도 모른다. 낚시꾼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맛있게 먹을 때가 있으면 맛있게 먹힐 때도 있는 법이지. 그게 인생이야….”

낚시꾼은 시간을 잊었다. 그의 상념은 깊어만 간다. 배스와 쏙독새, 개구리와 모기, 우리 모두는 왜, 어떤 경로로, 어떻게 해서, 오늘 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이게 되었을까. 배스와 인간이 걸어 온 오랜 진화의 시간여행에는 어떤 미스터리가 깃들어 있을까.

원제 ‘DARWIN'S BASS’(1996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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