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가 “이중섭-박수근 걸린 그림 다시보자” 위작 후폭풍

  • 입력 2005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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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소’ 진품과 한국화랑협회가 1999년 가짜로 판정한 위작. 가짜는 진품에 비해 소의 코 부분 표현이 서툴고 전체적으로 골격이 어색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중섭의 ‘소’ 진품과 한국화랑협회가 1999년 가짜로 판정한 위작. 가짜는 진품에 비해 소의 코 부분 표현이 서툴고 전체적으로 골격이 어색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중섭 박수근 화백의 가짜 그림 파문이 거대한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화단에서 최고의 인기 작가인 두 대가의 작품 외에 유명 생존 작가들의 그림까지 덩달아 가짜 시비에 휘말릴 조짐이다. 10년 장기 불황의 늪을 헤매고 있는 미술시장으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특히 검찰이 미술계의 고질(痼疾)인 위작 제조 및 유통 조직에 대해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 경우 그 파문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증폭될 전망이다.

▽검찰 본격 수사 나설까?=검찰 수사가 이번에 논란이 된 그림의 제조 및 유통 과정에 국한될지, 더 나아가 위작 제조 및 유통 조직 전체에 대한 본격 수사로 확대될지는 아직 명확치 않다.

검찰 관계자는 9일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해 과거 가짜 그림을 그렸거나 유통시킨 전력이 있는 중개상 등을 상대로 가짜 그림 유통 경위를 파악 중”이라며 “추가 조사를 거쳐 관련 중개인 등을 소환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번 사건 외에 다른 가짜 그림에 관련된 첩보가 몇 가지 입수돼 확인을 하고 있다”며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여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덧붙여 수사 확대 여부에 대한 확실한 언급을 피했다.

한 미술계 인사는 “법조계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미술품을 소장하고 있거나 고미술품 거래에 관련이 있는 게 현실이어서 검찰이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진 않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며 “하지만 검찰이 이번에야말로 전문 위조범을 색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근의 ‘귀로’ 진품과 한국화랑협회가 2000년 가짜로 판정한 위작. 위작 속 여인의 얼굴은 다른 작품에 나오는 여인의 얼굴선에 비해 서툴게 표현돼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불씨 꺼지지 않은 이중섭 위작 논란=이 화백의 그림에 대한 위작 판정 자체도 법원의 최종 판결이 아니어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화백의 차남 태성(泰成·일본 도쿄 거주) 씨는 본보에 보낸 e메일을 통해 “확실한 감정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한국이 아닌 외국, 제3국에서 감정을 받는 방안도 있다”고 강조했다.

소장 그림을 압수당한 김용수(金鏞秀) 한국고서연구회 명예회장도 “58점에 대한 안목 감정 결과로 전체 작품 2000여 점의 진위를 미루어 판단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편 3월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 태성 씨가 내놓은 그림의 출품자는 검찰 수사 결과 중개인인 일본인 마크 하토리 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태성 씨에게는 수천만 엔에 달하는 거액의 선급금까지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섭 박수근의 그림은 몇 점이나 될까=두 작가 모두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광복과 전쟁이란 격동기에 작품 활동을 해 유작이 많지 않다는 것이 미술계 중론이다. 이 화백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삼성 리움미술관 이준 학예연구실장은 “이 화백은 유화 100점, 드로잉 330점 등 430여 점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작품구매 속지 않으려면

국내 미술시장에서 가짜 그림은 주로 어떤 작가들의 것이 많이 유통되는지, 속아 사지 않을 방법은 없는지 살펴본다.

▽위작의 타깃이 되는 주요 작가들=위작 문제가 본격 대두된 것은 미술시장이 활성화된 1980년대 초부터다. 1980년대 후반에는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 김환기 도상봉 오지호 화백 등 유명 작가 도록에 실린 작품을 사진기로 찍은 뒤 필름을 환등기로 비추어 정밀하게 복사한 위작이 나오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와서는 더욱 지능화돼 이미 발표됐거나 잘 알려진 작품 대신 작가가 심심풀이로, 혹은 실험적으로 습작한 듯한 스타일의 위작들이 등장했다. 작고한 유명 작가의 비싼 작품에 한정됐던 위작이 황유엽 김영주 장이석 조병덕 화백 등 생존 작가 중심으로 바뀐 것도 특징이다.

▽가짜 그림을 사지 않으려면=생존 작가의 경우에는 작가에게 직접 감정을 의뢰하는 것이 가장 좋다.

작고 작가의 작품에 대한 진위 감정은 감정위원들이 판단한다. 현대미술의 경우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와 이번에 이중섭 화백의 그림을 위작으로 지목한 한국미술품감정협회로 이원화돼 있으며, 고미술 쪽은 한국고미술협회가 주로 맡는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화랑 주인은 “미술 애호가층이 얇은 상황에서 블루칩을 중심으로 한 투자 개념으로 구매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위작이 계속 시장에 흘러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림을 사려는 입장에서 100% 안전한 대책은 없는 게 현실이다.

한 화랑 주인은 “재테크 수단으로 작가의 유명세만 좇을 경우 가짜 그림에 속을 위험이 크므로 꾸준히 감상하고 공부해 안목을 키우면서 차근차근 그림을 구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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