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교육 표현력 키우기부터…받아쓰기 강요는 스트레스

  • 입력 2005년 6월 24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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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글교육을 시작하는 시기가 만 3, 4세로 빨라지면서 만 6세가 된 초등 1학년생은 대부분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받아쓰기는 한글 떼기와는 또 다른 문제. 정확한 글자를 익혀 주기 위한 받아쓰기는 언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 받아쓰기 논란

받아쓰기를 둘러싸고 스트레스를 받는 어린이와 학부모가 적지 않다. 한글을 뗐다고 안심하던 학부모가 막상 초등학교 첫 시험인 받아쓰기에서 만점을 받지 못하면 아이의 인지능력을 의심하게 되고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을까 걱정한다.

육아교육전문 출판사인 ‘한울림’ 곽미순 주간은 “유아를 가진 부모는 물론 초등생 학부모들이 한글 관련 책을 찾는 것을 보면 ‘받아쓰기’에 대한 스트레스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10년간 살면서 초등 보조교사를 하기도 한 서남희 씨(그림책 전문가)는 “미국에서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단어를 말하고 받아쓰기를 시킨다. 그러나 취학 전에는 ‘창의적 스펠링’이라고 해서 철자가 틀려도 개의치 않는다”며 “한국에서처럼 유치원생부터 집에서 받아쓰기를 시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글자 공부를 ‘많이’ 한 아이들이 정작 학교 수업에는 흥미를 잃기 쉬우므로 입학 전에는 책읽기에 흥미를 붙여 주는 정도가 적합하다고 조언한다.

경희대 김지영(언어교육) 교수는 “주입식 받아쓰기는 아이들의 언어능력 발달에 효과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외국어건 모국어건 언어교육은 △두려움을 없애는 친밀감 형성 △의미를 알고 표현하는 유창(流暢)성 △문장 구조와 철자법을 익혀 언어를 정확하게 다루는 정확성의 단계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

“알지도 못하는 낱말을 정확성을 위해 받아쓰도록 하면 어휘력이나 표현력 발달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외국어인 영어도 마찬가지. 김 교수는 “영어 습득의 목적이 의사소통이라지만 시험 위주의 방법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공부가 아니라 습득의 방법으로 영어를 익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 언어교육은 정확성보다 의사소통이 더 중요

일본 시라우메가쿠엔(白梅學園)대 무토 다카시(無藤隆) 학장도 최근 삼성복지재단 주최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 “유아들에게 글자를 읽고 쓰도록 하기보다는 어휘력과 표현력을 길러 줘 책을 이해하고 작문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도 아이들이 일찌감치 읽기 쓰기를 배우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 정확한 글자를 익히도록 해도 늦지 않습니다. 국어 능력은 문자학습만으로 성립하지 않으며 생활 전반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언어활동이 더 중요하지요.”

그는 구체적으로 유치원 취학반 263명이 초등학교 1학년까지 어떻게 언어능력이 변화하는지를 연구한 결과 읽기 쓰기에 대한 조기교육이 이후 국어능력에 미치는 영향이 낮았다고 소개했다.

유아 때의 능력과 초등학교 때의 국어(문장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등) 시험결과의 상관관계는 모두 긍정적이었지만 어휘력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

유아 때 읽기를 할 수 있는 아이의 경우 국어 점수가 0.31점(1.00점 만점), 쓰기를 할 수 있는 아이의 경우 0.16점이었다. 반면 유아 때 어휘력이 풍부했던 아이의 경우 0.40점을 받았다.

아이가 글자도 익히고 말도 잘하도록 할 수는 없을까.

덕성여대 이영자(유아교육) 교수는 최근 서울지역 만 3, 4세 유치원생 136명을 대상으로 16주간 조사한 결과 그림책 이야기를 들려 준 뒤 이야기를 나누도록 한 팀이 그렇지 않은 팀보다 언어표현능력과 정서조절능력이 높았다고 발표했다.

‘우리아이 한글떼기’의 저자 김효정 씨도 “말과 글을 동시에 터득할 수 있는 언어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이와 글자놀이를 하거나 함께 그림책을 만들어 보라”고 권했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낱말을 아이에게 보여주기 전 낱말과 관련한 사물에 대해 경험토록 하라: 시계를 보면서 “오빠가 학교에서 올 시간이네”하고 말해 시계에 대해 인식시킨 뒤 ‘시계’라는 낱말을 보여 준다.

△낱말을 가지고 논 뒤에는 그 낱말이 가리키는 사물과 관련된 말을 많이 한다: ‘토끼’란 낱말을 가지고 놀았다면 “우리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가 볼까”하고 말한다.

△목표는 한 주 또는 하루 단위로 세운다: 목표가 없으면 꾸준하게 못한다. “이번 주에 낱말 6개, 혹은 오늘 낱말 2개” 등 계획을 세운다.

△엄마는 욕심을 버린다: 아이가 잘 따라 주지 못할 때 조급해지고 글자만 보면 짜증을 내게 된다. 한글 떼기보다 아이와 엄마의 공감대가 먼저다.

△그림책을 많이 보여 준다: 아는 글자를 찾아내는 즐거움은 아이에게 크다.

자료: 차은경의 ‘한글아, 놀자’(한울림)

△들려 주기를 생활화한다: 엄마가 끊임없이 영어로 말해 주고 영어동요나 동화책을 자주 들려준다.

△다양한 방법으로 영어를 만나도록 한다: 오디오 비디오 컴퓨터 동화책 등 다양한 종류로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시도한다. 아이는 나이에 따라 관심과 흥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베드타임 스토리를 적극 활용한다: 아이가 잠들기 전 영어책 몇 권을 읽어준다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아이가 즐겨보는 영어비디오를 오디오로 녹음해 틀어 준다: 좋아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 아이의 영어 배우기는 도로 아미타불이 된다: 아이가 영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게 돼 꾸준히 하지 못한다.

자료: 쑥쑥닷컴의 ‘영어야, 놀자’(한울림·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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