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53>신기관-프랜시스 베이컨

  • 입력 2005년 6월 3일 0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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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베이컨은 과거의 잘못된 과학을 비판하고 이러한 비판 위에 새로운 근대 과학을 정립하려고 노력했던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였다.

베이컨은 1620년부터 자신의 새로운 학문체계를 집대성한 ‘대혁신’을 총 6부로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는 1605년 발표한 ‘학문의 진보’를 개작해서 ‘대혁신’의 1부로 편입시켰고, 제2부로 ‘신기관’을 저술했다. ‘신기관’은 베이컨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기관’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두고 쓴 야심작이었다.

베이컨이 근대 과학의 정신을 대표할 만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유는 그가 실험이라는 새로운 과학 방법론을 강조했으며, 결국 이러한 방법론이 정착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과학 방법론의 정수를 담고 있는 저작이 바로 ‘신기관’이다.

‘신기관’의 제1권은 삼단논법이 자연의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으로 부적절함을 강조하면서, 진정한 ‘자연에 대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으로 ‘참된 귀납법’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베이컨은 인간 지식의 오류의 원천을 인간의 본성에서 유래한 종족의 우상, 편견에서 유래한 동굴의 우상, 언어와 의사소통에서 유래한 시장의 우상, 학파의 오류에서 유래한 극장의 우상이라는 4가지 우상으로 분류한 뒤에 이를 비판했다.

결국 베이컨에게 과학의 방법론의 핵심은 사물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정적(靜的) 원리를 사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무엇에 의해 일어나고 있나라는 동적(動的)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 사실들을 광범위하게 수집해야 하며, 이러한 광범위한 탐구는 실험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는데, 실험에 대한 강조는 베이컨이 생각했던 새로운 논리학의 정수였다.

베이컨 이전에는 실험이 자연을 교란시키기 때문에 진정한 과학의 방법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본심이나 지적 능력, 품고 있는 감정 등은 평상시보다는 교란되었을 때 훨씬 더 잘 드러난다”고 비유하면서, “마찬가지로 자연의 비밀도 제 스스로 진행되도록 방임했을 때보다는 인간이 기술로 조작을 가했을 때 그 정체가 훨씬 더 잘 드러난다”고 자연에 대한 조작을 정당화했다.

베이컨의 ‘신기관’은 근대 과학의 방법론은 물론 과학의 진보와 효용에 대한 믿음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책이다.

이 책은 17세기 과학혁명을 주도했던 과학자들에게 널리 읽혔고, 결국 영국의 ‘왕립협회’나 프랑스의 ‘과학아카데미’와 같은 새로운 과학단체들을 설립하고, 실험과학을 추동했던 동인이 되었다.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서 자연에 조작을 가하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법칙을 알 수 있다고 믿게 되었고, 이러한 실험을 위해서 공동연구를 해야 하며 더 나아가서 국가와 사회가 이러한 과학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참된 과학적 방법에 대한 확신, 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 진보에 대한 희망은 서구의 ‘근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며, 이는 베이컨의 ‘신기관’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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