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0년전 한반도에 국가?

  • 입력 2005년 4월 7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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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기의 고인돌과 40여기의 석관묘 등 청동기시대의 다양한 묘제가 집중적으로 발견된 경남 마산시 진동면 진동리 유적에서 석관묘의 분포를 보여주는 항공사진. 하얀 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석관묘다. 사진 제공 문화재청
30여기의 고인돌과 40여기의 석관묘 등 청동기시대의 다양한 묘제가 집중적으로 발견된 경남 마산시 진동면 진동리 유적에서 석관묘의 분포를 보여주는 항공사진. 하얀 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석관묘다. 사진 제공 문화재청
경남 마산시 진동면 진동리 116 일대에서 청동기시대 초·중기(기원전 6∼5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30여 기의 고인돌과 40여 기의 석관묘가 무더기로 발굴됐다.

7일 현장에서 열린 문화재 발굴조사 설명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진동 유적지는 무덤의 규모나 다양성 측면에서 청동기시대의 모든 묘제가 모인 종합전시장 같다”면서 “한반도에서 국가가 출현했던 기원전 3∼1세기 이전에 권력자와 위계화된 계층사회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라고 평가했다.

이 유적지는 자연제방을 따라 약 400m에 걸쳐 8개의 묘군(A∼H군)이 고인돌 띠를 형성하고 있으며, A군에서만 지름 20m에 이르는 대형 고인돌 12기가 발굴됐다.

대형 고인돌의 경우, 아랫부분에는 잔 자갈이 깔려 있고 중앙에는 길이 130cm 폭 105cm의 매장주체부(시신이 놓인 곳)가 있다. 주변에는 폭 4m의 도랑(주구·周溝)과 무덤을 흙으로 덮은 봉토(封土)의 흔적,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무덤 위로 돌을 쌓은 즙석(葺石) 등이 갖춰져 있다. 묘 내부에서는 돌칼과 돌화살촉이 출토됐고 주구에서는 붉은간토기(단도마연토기)와 민무늬토기(무문토기) 파편들이 나왔다.

봉토와 도랑, 자갈층을 이용한 이 같은 무덤구조는 중국 신석기 말의 우하량(牛河梁) 유적과 유사하고 일본 야요이(彌生) 문화와의 연관성까지 추적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했다. 전문가들은 “이 유적은 한반도 해양문화의 거점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자연제방 위쪽에 집중 배치된 고인돌군과는 달리 제방 기슭에 낮은 계층의 것으로 보이는 석관묘가 2∼5기씩 군집을 이뤄 조성돼 있다. 석관묘 일부에서는 인골도 출토됐다. 이 중 하나는 6∼12세의 어린이로 추정되는데, 두개골과 대퇴골의 거리가 30cm가 채 되지 않아 굴장(시신을 굽혀 매장)을 했거나 두 차례에 걸쳐 매장하는 세골장(洗骨葬)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가야의 수혈식 석실과 신라의 소형 석곽묘 등 후대의 묘제가 모두 나오고 있어 문화의 연속성을 찾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며 “상고사를 새롭게 써야 할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임효택(동의대) 이청규(영남대) 교수 등은 “국가 출현 전 발달한 군장(君長)사회의 단계로 보인다”고 말했다.

마산=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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