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 입력 2005년 2월 18일 16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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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송호근 지음/264쪽·1만2000원·21세기북스

‘나는 그 대안으로 중심의 이동을 선택했다.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 좌파로 이동하고, 좌파 정권이 등장하면 우파로 옮겨 앉는 것이 지식인의 생리이자 자유인의 행동강령이다. 중용(中庸)에서 얘기해주듯 시중(時中)의 논리, 또는 중심 이동의 미학인 셈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참신한 현실 분석력과 능란한 글 솜씨를 보여 온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이 글이야말로 이 책이 채택한 관점을 잘 대변한다.

저자는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출범할 때 진보정치에 대한 기대를 품었으나 집권 2년을 맞은 지금 한국이 미래를 향해 진보할 것인가에 대해 짙은 회의를 품게 됐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한국 사회의 파산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보수와 진보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기회주의자’의 자세에서 진보정치 2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힌다.

그는 집권한 지 2년을 코앞에 둔 현 정부의 문제점을 ‘이념의 과잉’과 ‘정책의 빈곤’으로 요약한다. 현 정부는 보수의 실패를 딛고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그 이념의 내용물은 성장주의·권위주의·국가주의의 대척점에 놓인 요인들의 엉성한 모자이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치밀한 프로그램 없이 독선적 도덕주의와 비현실적 이상주의, 실속 없는 허세주의에 빠져 파괴와 해체만 했을 뿐 창조와 건설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현 정부는 ‘정책국가’가 아니라 ‘정치국가’를 지향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딱딱하고 호흡이 긴 논문 형식의 ‘롱 테이크’ 구성을 버리고, 짧고 감각적 칼럼 형식의 글로 분할된 ‘몽타주 기법’을 채택한 이 책에는 2개의 렌즈가 쓰였다. 세대와 이념이다.

저자는 386세대를 중심에 두고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라는 삼각의 역학 관계를 넘어서서, 386세대와 포스트386세대의 분화에 주목한다. 그는 ‘어제의 동지’였던 두 세대 간에 공동체적 자유주의 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조직 지향 대 시장 지향, 혁명 대 탐닉이라는 대립 요소가 뚜렷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그는 또 현 정부에서 이념이 강조되면서 산업화와 민주화, 포스트 민주화 세력 간의 ‘느슨한 동맹’이 해체돼 각각 보수주의, 보수적 자유주의, 진보적 자유주의로 이념의 분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세대 구분과 대체로 일치하는 이러한 이념 분화는 세계화, 북한 문제, 경기 침체라는 세 가지 문제가 촉발하는 이해 충돌에 현 정부가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점차 범(汎)보수와 범진보의 양극화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포스트386세대에 성찰의 양식을 공급하고,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이념적 양극단 사이에 중첩된 자유주의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을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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