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시골 여염집 같은 그래서 정겨운… 건립100돌 행주성당

  • 입력 2005년 1월 31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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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역사를 이어 온 행주성당의 외관(위)은 한없이 소박하다. 안에 들어서면 윤기가 흐르는 들보와 서까래, 마룻바닥이 단아한 향취를 풍긴다. 지난해 11월 부임한 홍승권 신부는 “우리 근현대사와 아픔을 함께 해온 행주성당이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을 키우는 성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동영 기자
100년 역사를 이어 온 행주성당의 외관(위)은 한없이 소박하다. 안에 들어서면 윤기가 흐르는 들보와 서까래, 마룻바닥이 단아한 향취를 풍긴다. 지난해 11월 부임한 홍승권 신부는 “우리 근현대사와 아픔을 함께 해온 행주성당이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을 키우는 성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동영 기자
1741년(조선 영조 17년) 겸재 정선은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 일대의 한강변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제목은 ‘행호관어’. ‘행호(杏湖)에서 고기 잡는 것을 살펴본다’는 뜻이다.

이 그림에는 한강변의 빼어난 경치를 즐기려는 당대 세도가들의 별장이 줄지어 들어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물론 이 그림에 등장하는 별장들은 지금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이곳에는 지난 100년간 근현대사의 굴곡을 지켜본 행주성당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소박한 단아함으로 신도들을 맞고 있다.

올해로 지은 지 100년을 맞은 이 성당은 현판도 없이 옛날 시골 여염집 모습 그대로다. 안에 들어가면 여느 성당과는 달리 신발을 벗고 마룻바닥에 앉아 예배를 봐야 한다.

천장에는 소나무 들보가 얹혀있고 벽면에는 명동성당을 개축할 때 이곳으로 옮겨온 예수그리스도 그림 10여 점이 걸려있다.

31일 오후 이곳으로 피정을 온 신도 10여 명은 ‘이런 성당이 다 있었다니…’라며 놀라는 모습들이다. 신도들은 오랜 세월 닳고 닳아 깊이 있는 광을 내는 마루와 책상, 1900년대 초기에 올려진 들보와 서까래를 보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행주성당 건물이 완공된 것은 1905년. 일제강점기에도 비교적 풍성한 경제생활이 가능했던 지역이어서 신도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광복직전 일제가 외국인 신부를 일제히 추방해 국내 전체 신부의 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이곳은 신부 없는 공소(公所)로 격하됐다.

광복 후 신도들이 크게 늘어나 성당의 이름을 되찾았으나 곧 6·25전쟁으로 건물 일부가 붕괴되면서 다시 공소가 되기도 했다.

성당 왼쪽에 튀어나온 출입문이 있는데 남녀구분이 엄격하던 건축 초기에 여성 신도들이 따로 드나들던 곳이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 신도들은 지금도 꼭 이 문으로 드나든다고 한다. 031-974-1728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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