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 칼럼]동물원 옆 미술관

  • 입력 2004년 12월 24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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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예술 분야 가운데 으뜸으로 치는 것은 미술이다. 음악 연극 무용 같은 공연예술이 미술보다 못해서가 아니다. 미술품의 탁월한 보존성 때문이다. 미술품은 3000년 전 그리스의 조각, 2000년 전 로마의 벽화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당시의 음악이나 무용은 재현이 불가능하다. 소리나 몸동작은 후대에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회성으로 끝나 버리는 공연예술의 숙명 같은 한계다.

그리스나 로마뿐이 아니다. 4000년 전 이집트 공예품도 끊임없이 관람객을 사로잡고 있고, 한국의 고구려 고분벽화도 한민족의 힘찬 기상과 빼어난 예술 수준을 오늘날까지 전달해 주고 있다.

▼맥 빠지는 문화행정 안목▼

디지털 시대를 맞아 미술의 가치는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20세기 컬러사진과 컬러TV의 시대가 열리면서 색채의 혁명이 요동쳤다. 인간의 색채 감각이 눈에 띄게 발달하고 산업에도 큰 영향력을 미쳤다. 우선 구매자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상품시장에서 승자(勝者)가 될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면 이를 떠받치는 중요한 축이 미술이다. 국민의 미적(美的) 안목이 높아지면 국가경쟁력이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미술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라마다 국가 차원에서 미술관을 육성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에서다. 훌륭한 미술관을 보유하고 활용도를 높이는 것은 문화산업을 키우는 데 큰 힘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시대 흐름이 색채와 감성 쪽으로 가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화나 TV드라마 같은 영상매체가 각광을 받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각국 정부가 미술관에 쏟는 노력은 각별하다. 미술관이 있는 자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퐁피두센터는 각종 대중교통 수단이 모이는 파리 심장부에 있다. 누구나 편리하게 찾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뉴욕의 근대미술관이나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 등 세계 대도시의 미술관은 예외 없이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다. 좋은 자리에 미술관을 지으면 그만큼 많은 돈이 들겠지만 투자에 인색하지 않은 것은 미술관의 중요함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상식 중의 상식이 안 통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을 과천 동물원 옆에 있는 산 속에 지어놓았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정부의 문화적 안목이 어떤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드러난다.

이 미술관은 지하철역에서 4km나 떨어진 곳에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국립미술관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문화 당국자는 이 미술관 얘기만 나오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릴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실패 사례로 오래 기억되고 자주 떠올려져야 한다.

참다못한 문화단체들이 경복궁 옆 소격동의 국군기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새로 짓자는 운동을 펴고 있다. 국군기무사는 2007년까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므로 꽤 넓은 땅이 생기는데 이 자리를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사실 이곳도 만족스러운 장소는 아니다. 교통이 더 편리한 도심 쪽으로 나와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터 확보가 어렵다면 이 자리에라도 미술관을 빨리 짓도록 정부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도심으로▼

올해 순수 문화예술은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대중문화가 잘 나갔던 것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느라 ‘등잔 밑의 어둠’이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심각한 것은 순수 문화예술의 불황이 고착화, 구조화되고 있는 점이다. 일시적인 침체가 아니라 대중문화의 현란하고 화려한 ‘마술’에 아날로그 문화가 경쟁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앞으로 좋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순수 문화예술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들의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며 상징적인 의미에서라도 새 국립현대미술관 건립 운동은 반드시 성사되어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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