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테러시대의 철학…’ 테러는 近代性의 자기파괴?

  • 입력 2004년 9월 10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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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시대의 철학-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화/지오반나 보라도리 지음 손철성 외 3인 옮김/332쪽 1만5000원 문학과지성사

이 책은 세 꼭짓점으로 이뤄진 팽팽한 삼각형의 구도를 하고 있다. 이등변이라 할 이 삼각형의 두 꼭짓점에는 우리 시대의 가장 저명한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와 자크 데리다가 앉아 있다. 다른 한 꼭짓점에는 21세기 벽두를 악몽처럼 장식한 9·11테러가 놓여 있다.

그 악몽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뿐만 아니라 악화일로에 있다. 냉전시대의 한 축이었던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9·11테러는 3년 만에, 이번에는 냉전의 다른 한 축이었던 러시아의 북오세티야공화국 한 초등학교에서 잔악한 형태로 부활했다. 그것은 공포영화 ‘나이트메어’의 프레디와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이 스크린 밖 현실을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탈리아의 여류 철학자 지오반나 보라도리는 이 악몽의 해결사로 유럽에서 2명의 ‘반 헬싱’을 초청한다. 그 2명, 하버마스와 데리다가 한 무대에 섰다는 것은 철학계에서는 공포영화 팬들에게 ‘프레디 대 제이슨’만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사건이다.

독일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기도 한 두 사람은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한창이던 시절, ‘합리적 이성의 최후 신봉자’와 ‘합리성과 근대성의 기반을 뒤흔드는 해체주의자’로 대별됐다. 하나의 비유를 들자면 두 사람은 거대한 퍼즐조각상을 갖고 노는 방식이 다른 어린이와 같다. 고대로부터 차곡차곡 맞춰져 온 그 퍼즐조각상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크게 훼손됐다.

하버마스에게 그 흩어진 퍼즐조각들은 하나하나 면밀히 검토해 새롭게 짜맞춰야 할 대상이다. 반면 데리다는 남아 있는 퍼즐조각상의 퍼즐조각을 섬세하게 해체하고 분류하는 것에 매혹돼 있다.

그런 사유방식의 차이는 9·11테러와 우리 삶의 연관관계를 파악하는 방식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여 준다. 하버마스는 9·11테러를 계몽주의와 세속화로 귀결되는 근대성의 급속한 확산의 부작용이 폭력과 결합한 병리현상이자 범죄라고 분석한다.

근대성은 ‘전통적 삶의 방식의 폭력적 근절’을 가져올 것이라는 두려움을 심어준다. 테러는 그런 근대성의 폭압성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왜곡된 저항이다. 그 해결책은 범죄자를 적의 지위로 격상시키는 ‘테러와의 전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근대성이 야기한 불평등과 소비주의 등의 부작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결국 진정한 의사소통에 실패한 서구문화에 대한 엄격한 자기 검토여야 한다.

반면 데리다에게 9·11테러는 근대성에 대항한 방어가 아니라 근대성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자가 면역적 위기의 표출이다. 자가 면역적 위기라는 의미는 외부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발적 자살까지 감행하도록 프로그래밍이 돼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 냉전시대에 소련에 맞서기 위해 미래의 적이 될 이슬람 테러단체를 무장시키고 훈련시켰다는 점이나 국가적 힘의 과시로 개발한 핵무기와 화학무기, 생물무기가 결국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 의미에서 데리다에게 9·11테러는 미국 중심 세계질서의 붕괴뿐 아니라 근대성의 총체적 와해를 뜻한다.

두 사람은 테러가 야기한 불확실성과 불안의 확산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동시에 ‘반테러’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도 비판적 입장을 표명했다. 이런 인식은 지난해 이 책의 출간에 맞춰 비폭력에 기초한 유럽의 단합을 호소하는 공동성명을 낳기도 했다. 원제 ‘Philosophy in a Time of Terror’(2003년).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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