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병익 칼럼]세대교체와 386의 과제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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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계의 두 거목인 고병익 선생과 이기백 선생이 이 봄에 잇따라 돌아가셨고 그분들의 학문적 업적을 공간(公刊)함으로써 우리의 학맥을 키워주신 일조각 한만년 사장도 그 어간에 작고하셨다. 평소에 내가 존경하는 분들의 연이은 타계로 갑작스레 쓸쓸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분들의 세대가 치른 운명을 되짚어 보았다.

▼일제 6·25거치며 산업화 견인▼

이분들은 1924∼25년에 태어나셨으니 80세의 수가 결코 짧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평생은 결코 편안할 수 없는, 어쩌면 우리 지식 세대에게 가장 험난한 시절이었다. 그분들이 대학에 입학할 즈음은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몰려 학병이나 징용으로 징발되거나 그것을 피하기 위해 몸을 숨겨야 했고, 광복의 기쁨을 맞이하면서는 좌우익 싸움으로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이념 투쟁에 시달려야 했으며, 겨우 대학을 졸업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는 6·25로 전란의 고생살이를 해야 했다. 이분들과 함께한 연배로 대표적인 분들이 사학계에는 한우근 천관우 선생, 프랑스문학계의 김붕구 선생, 작가 손창섭 장용학 선우휘 선생, 시인 김수영 선생, 그리고 언론인 송건호 장준하 선생 등이다.

이 세대의 젊은 시절은 두 차례의 전쟁으로 수난과 혼란의 범벅이었고 태어나면서부터 일제 식민체제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지식사회를 오늘날과 같은 현대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사학계 분들은 식민사관을 극복할 민족사관을 구성했고, 문단의 이 세대는 실존주의를 비롯한 현대적 사조를 제대로 가르쳐 주며 전후의 암울하고 비관적 세계관을 이겨낼 전망을 제시해 주었다. 이분들은 현대의 사회와 인간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훌륭한 문화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강의와 작품으로, 신문과 잡지로, 드디어는 실천의 본으로 보여 주었다. 70년대 이후의 우리 경제성장을 산업화시대로 견인한 세대도 바로 이들이었다. 우리의 역사적 전개 과정으로 보자면 이들은 선비들의 전통적인 지적 풍토와 컴퓨터가 더 잘 어울리는 현대적 지식 세계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어 오늘의 우리 모습으로 길을 열어준 ‘낀 세대’가 될 것이다.

우리의 세대사(世代史)로 보아 20년대에 태어난 이 세대 못지않게 불행한 세대가 아마도 386세대일 것이다. 이들은 60년대에 태어나 절대 빈곤과 급격한 사회 변화를, 그것도 일인 독재체제 하에서 유년기부터 겪어야 했고, 철이 들 소년시절에는 유신체제의 반공교육을 받았으며, 성년기에는 이념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실천운동으로 뛰어들었고, 그 때문에 수배당하거나 감옥살이로 시달려야 했다. 그들은 정상적인 공부를 할 수도 없었고, 젊은 날의 낭만을 즐길 수도 없었다. 이들은 자기 아버지 또래인 20년대 세대와 비슷하게, 역사의 무게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사사로운 욕망을 희생해야 했고 자신의 시대와 현실을 상대로 고통스럽게 싸워야 했다.

▼풍요로운 사회 만들 사명 떠안아▼

그 386세대들이 청와대와 여야 정당에 진입하고 지난 총선에서 국회의원의 상당수를 차지하며 우리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약진했다. 바로 그 즈음, 20년대 세대들이 80의 나이에 이르면서 유명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정치 문화적 환경이 바뀌면서 우리의 세대교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세대들도, 그들의 아버지 세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빈곤의 역사에서 풍요한 사회의 역사로, 냉전체제의 인식으로부터 세계화로의 인식으로, 아날로그 문화에서 디지털 문명으로의 거대한 변화에 대한 사상적 학문적 시민적 삶의 길을 열어갈 시대사적 과제를 맡은 것이다. 세대는 바뀌었지만 새 세대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크고 중요하다.

김병익 문학평론가·인하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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