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패러디 “화났다”

  • 입력 2004년 6월 11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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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패러디가 공분(公憤)의 장으로 뛰어들었다.

사진을 합성하거나 영화 제목을 변주해 사회 현상을 유머러스하게 꼬집던 인터넷 패러디가 최근 들어 ‘공공의 적’을 향해 집단 분노를 표출하거나 사회 정치적 사안을 두고 사람들을 적극 설득 선동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네티즌들이 직접적인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문자가 아닌 시각이미지를 선호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징후로 해석된다.

‘디시인사이드’나 ‘미디어몹’과 같은 전문사이트와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요즘 뜨거운 공분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단연 ‘불량 만두’. 특히 15년간 감금된 채 군만두만 먹어야 했던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올드 보이’는 불량 만두소 제조책임자에 대한 책임 추궁과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패러디의 단골 소재다. 망치를 든 주인공 오대수가 조직폭력배와 맞서는 영화 장면 사진에 “으악∼ (만두소를 만든 게) 너냐∼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었다. 이런 십장생”이란 글이 쓰여 분노와 풍자를 보여준다. ‘올드 보이’ 포스터는 ‘만두 보이’ ‘올드 만두’ 등으로 시리즈화 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슈렉2’의 포스터를 패러디한 ‘쓰렉이’는 ‘안 걸리면 장땡. 걸려도 다시 한번 더’라는 문구를 통해 현행 식품위생관리 규정의 허점을 구체적으로 짚어냈다. 영화 ‘실미도’를 패러디한 ‘만두 값 돌리도’, ‘그녀를 믿지 마세요’를 패러디한 ‘만두빙자 사기극―만두를 믿지 마세요’도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일종의 놀이문화였던 인터넷 패러디는 3월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를 전후해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사회적 통로로 성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어 5월에는 국민연금제도의 허점을 조목조목 비판한 ‘국민연금의 비밀’이라는 글이 인터넷에 확산되면서 현행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패러디들로 인터넷이 다시 달아올랐다. 한 이동통신 광고를 변형 패러디한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 (직장인) 등치기, (대국민) 뻥치기’가 인기를 모았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패러디한 ‘연금의 추억’은 연금 고갈을 비판했고, 액션영화 ‘옹박’ 포스터의 패러디 ‘피박’은 ‘연체는 없다. 신불자(신용불량자)도 내라. 밥 굶어도 내야 한다’면서 제도시행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최근엔 ‘불량 만두’와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분노를 합친 ‘혼합형 패러디’도 속출하고 있다.

공분까지는 아니라도 정치 현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드러내고 다른 네티즌의 동참을 호소하는 선동적 성격의 패러디도 등장했다. 그중 하나가 이해찬 의원의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소식이 발표된 뒤 등장한 인터넷 패러디들. 이 의원이 과거 교육부 장관 시절 추진했던 교육개혁 프로그램의 맹점과 부작용을 부각시키면서 총리 지명에 반대하는 패러디들이 등장한 것. 이 총리후보의 이름과 비슷한 한 고추장 광고를 살짝 비튼 ‘교육 말아먹은 고추장, 저희 고추장에 야자(야간자율학습)는 없습니다’라는 패러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그동안 댓글 등 문자로만 의사를 표시해 오던 네티즌들이 디지털카메라와 포토숍이 대중화됨에 따라 시각효과를 활용한 패러디로 자신들의 주장을 보다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며 “이 같은 패러디는 기존 영화포스터나 사진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기주장을 ‘저예산 고효율’로 알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이 같은 인터넷 패러디를 18세기 프랑스혁명 전후 광범위하게 유포됐던 포르노그래피와 견주기도 한다. 프랑스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암캐’로 풍자한 당시의 포르노그래피들은 왕실의 권위를 깎아내리면서 결국 ‘앙시앵레짐’의 해체에 대중이 나서도록 선동한 일종의 ‘뉴미디어’였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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