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일상탈출 낯선 경험… 사교모임 ‘클럽 더 웰버’

  • 입력 2004년 5월 13일 16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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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고제인 젤라틴이나 팽창제인 베이킹파우더 같은 걸 넣은 제품을 과자라고 부릅니다. 이스트가 들어가면 빵이라고 하죠. 지금 우리가 먹는 과자의 기초가 완성된 건 16세기 프랑스 왕실이고….”

대한제과협회 김영모 회장의 설명이 시작되자 수선스럽던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하얀 제빵사 옷에 앞치마, 모자까지 쓴 학생 10여명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 Shall We Bake?

얼마 전 어느 저녁 서울 강남구 도곡동 김영모과자점. 명사들의 사교 모임인 ‘클럽 더 웰버’의 모임이 한창이다. 매달 한 가지씩 다른 주제로 모임을 갖는데 이번 주제는 ‘Shall We Bake?’. 가족을 위한 과자와 케이크 만들기에 도전했다.

인터컨티넨탈호텔 심재혁 사장, 법무법인 세종의 김두식 변호사, 강학중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전 ㈜대교 대표이사), 영화 실미도의 시나리오를 쓴 추계예대 김희재 교수, 플로리스트 유승재씨…. 자리를 함께 한 인사들의 면면이 범상치 않다.

“자, 이제 시작해 봅시다. 반죽을 두 가지 만들어 섞게 됩니다. 우선 앞에 놓인 볼에 계란을 깨뜨려 넣고 휘저으세요.”

과자의 유래에 대한 설명에 이어 본격적인 실습이 시작됐다. 첫 과제는 ‘폼포네트 오 마롱’. 아몬드 가루가 들어간 조그만 과자다.

계란으로 거품을 내고 밀가루를 반죽하고…. 처음 해보는 과자 만들기. 결코 쉬울 리 없었다. 서툰 손길이 이어지자 저쪽 편에서 작업을 지켜보던 도우미들만 바빠졌다.

김 변호사가 버터를 녹여 으깬 것을 요리용 볼에서 힘들게 떼어내며 “좀 어설프죠”라고 머쓱한 표정으로 웃는다. 플로리스트 유씨가 쩔쩔매고 있자 강사인 김 회장이 “꽃에 관해선 대가이신데 부엌일은 자주 안 하셨나 보군요”라고 농담을 건넨다. 웃음이 터졌다.

어렵사리 반죽이 끝난 후 각자에게 과자 틀에 반죽을 짜넣는 주머니가 배분됐다. ‘예쁘게’는커녕 ‘적당한 크기로’ 짜는 것도 쉽지 않았다. 너무 힘을 줘서 한꺼번에 너무 큰 덩어리로 떨어지거나 희한한 모양이 나오기 일쑤. 서로 작업하는 모습을 쳐다보며 계속해서 웃음, 또 웃음. 일상을 떠난 낯선 경험은 즐거웠다.

○ 경험을 팝니다

모임의 이름인 ‘웰버(wellber)’는 ‘웰빙+사람’이라는 의미로 만든 말. 웰빙 소사이어티 홍종희 대표가 20명가량의 명사들을 엮어 모임을 만든 주인공이다.

이런 모임을 왜 만들었을까.

홍 대표는 “잘 나간다는 분들도 시간 날 때 뭘 하는지 물어보면 골프 아니면 폭탄주라고 대답한다”며 “학생이라고 치면 오로지 ‘국어, 영어, 수학’만 공부하는 격”이라고 대답했다. 홍 대표는 여기서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읽었고 아예 회사를 차렸다. 평소 못 해봤던 것, 생각은 있어도 하기 어려웠던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업이다. 1년 단위로 회비를 받고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요리 같은 게 전형적이죠. 남자들도 한 번쯤 배워보고 싶지만 좀처럼 기회가 없고 찾아가서 배우기도 뭐하고….”

빵 만들기에 이어 국궁(國弓), 요가 등 다달이 다른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인터컨티넨탈호텔의 심 사장은 홍 대표가 ‘경험을 판다’는 사업 구상을 처음 얘기했을 때부터 적극적으로 자문역을 자청했다. 자신에게 비서가 있어도 취미생활까지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던 터였다. 그는 “내가 있는 호텔에도 빵 조리부가 있지만 사장이 가서 배우기는 쑥스럽지 않으냐”고 말했다.

○ “삶의 만족이 곧 웰빙”

다들 바쁜 사람들.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것만으로 이들을 매달 모이게 하기는 어렵겠다 싶었다.

김 변호사는 “직업을 떠나서 다양한 분야의 좋은 사람들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모임에 나오는 사람 가운데 미리 알고 있던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친구들에게서는 만날 때마다 신선함을 느끼기 어렵고 비즈니스 때문에 만나다면 좀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로터리클럽처럼 규모가 큰 모임은 형식적이기 쉽다는 것이다.

배운 게 실제로 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3월에 이미지 메이킹을 배운 후엔 얼굴색에 맞는 색깔의 와이셔츠를 골라 입을 수 있게 됐다.”(심 사장)

“직접 만든 과자를 교회에 가져가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직업 때문인지 다른 사람에게 날카롭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에 그런 이미지를 다소 벗을 수 있었다.”(김 변호사)

홍 대표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자신의 삶에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진정한 웰빙 라이프”라고 정의했다. 바로 클럽 더 웰버가 지향하는 점이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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