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 21워크숍]시민운동도 의회민주주의가 토대

  • 입력 2004년 4월 6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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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산하 21세기 평화연구소는 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세계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와 공동으로 ‘새로운 민주주의와 평화 패러다임을 찾아서’를 주제로 국제 전문가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날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을 다룬 제1부는 서울대 안청시(安淸市) 교수가, 국제정치학의 한국적 해석을 다룬 제2부는 고려대 강성학(姜聲鶴)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제1부> ▽투란 교수=일정 수준의 민주주의 실현과 경제 성장은 시민사회의 필수조건이다. 중산층이 형성돼야 사회 내부의 작은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또 이미지 개선을 희망하는 기업의 지원도 필수적이다. 현재 터키엔 모스크(회교성원) 건설 모임, 종교적 소수자 지원조직 등이 시민단체로 활동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정치적 요구를 하는 단계엔 미치지 못했다. 앞으로 시민단체의 활성화를 기대한다.

▽라샤펠르 교수=한국 시민사회의 성장에서 인터넷의 역할이 강조됐지만 그것이 참여자의 행동을 바꾸는 요소는 아니다. 1960년대 시민운동이 전성기를 누릴 때 인터넷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시민단체가 정치인의 역량을 어떻게 평가할지 의문이 든다.

▽슈미르노프 교수=러시아에는 정부 지원이나 회원들의 회비로 재원을 충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해외단체의 지원을 받는 비정부기구(NGO)가 많다. 이들 가운데는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지역개발형이 적지 않다. 시민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시민운동가가 정상적이고 효율적인 훈련을 받는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한다.

▽이신화(李信和) 고려대 교수=과거 한국의 시민운동가는 통일과 민주화라는 과제를 놓고 도덕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활동했다. 과거에 이들은 실정법은 어겼지만 시민적 반대는 없었다. 그러나 최근의 촛불시위는 큰 위법은 없었지만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불렀다.

▽박철희(朴喆熙) 외교안보연구원 교수=1987년 이후 시민운동은 의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에 도전세력이 됐다. 시민사회가 민주사회 진전에 기여했지만 정치기구에 대한 신뢰부족 때문에 지나치게 도덕주의로 흘렀던 것이다. 시민사회도 의회민주주의라는 토대 위에서 마련돼야 한다.

<제2부> ▽타쉬 교수=한국적 정치학모델에서 북한 문제는 최우선적 고려대상이다. 베를린장벽 붕괴 1년 전까지 누구도 독일 통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통독 후 사회통합 과정에서 치른 고통을 한국식 모델에서 다뤄야 한다.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동서독간 환율차이 때문에 동독인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고 서독인은 비용부담을 꺼렸다.

▽김달중(金達中) 전 연세대 교수=냉전 붕괴 후 한국 정치학계에서 신현실주의적 접근법이 주목받고 있다. 정글 같은 국제관계에서 민주국가끼리는 다자안보체제를 통해 전쟁위험을 줄인다는 것이다. 힘의 논리를 주장하는 현실주의와 민주국가끼리는 전쟁에 이르지 않는다는 자유주의적 접근법의 접합점을 모색한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주변의 한일, 일중 관계를 바라볼 때 새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류석진(柳錫津) 서강대 교수=민주국가끼리 안 싸운다는 자유주의적 접근법은 제도상 민주가 아니라 결정 과정의 민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코소보분쟁 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전쟁을 치른 유고연방은 민주국가였지만 인종청소 등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 일본도 민주국가지만 불법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다.

▼민주주의 완성과 NGO 역할▼

▽제1주제 발표-김의영 경희대 교수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는 국가와 시민사회(비정부기구·NGO)는 상생(相生)의 시너지 관계여야 한다. 시민사회는 정부를 감시, 비판하고 정치 발전을 요구하는 한편 스스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바람직한 정부정책에 도움을 주는 이중적 역할을 한다.

이는 “시민사회가 성숙해야, 국가 역량이 강해진다(strong society, strong state)”는 미 하버드대 로버트 퍼트남 교수의 말에 잘 담겨 있다.

한국 시민운동의 대표적 사례인 2000년 낙천 낙선운동은 야누스의 두 얼굴로 평가된다. 당시 명단에 오른 후보의 68%가 선거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낙천 낙선운동은 부정적 정보만 공개한 네거티브 캠페인이었고 정책역량보다는 도덕성만 유독 강조한 탓에 중립성 및 객관성 담보에 관한 과제를 남겼다.

설문조사 결과 시민사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긍정적 평가는 일반인(70%)과 노동계(57%)에서 높지만 국회(11%)와 정부기구(25%)의 평가는 낮았다.

시민단체가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의약분업 정책수립 및 시행과정에서 시민단체는 정부 개혁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참여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정책은 국민들의 비판을 받았다. 따라서 정책 실패라는 정부의 부담을 시민사회가 떠안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또 정부가 시민단체에 대해 프로젝트별로 재정지원을 하는 상황에선 시민단체들이 독립성 객관성 유지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 시민운동에선 국민의 70%가 인터넷 고속통신망에 가입한 네티즌이란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2002년과 올해의 촛불시위도 인터넷 시민운동의 한 양상이다.

▼국제정치학의 한국적 해석▼

▽제2주제 발표-김기정 연세대 교수

한국에서의 국제정치학 연구는 그동안 미국 러시아 등 초강대국 중심의 국제안보 분야가 주류를 이뤘다. 또 한국적 모델보다는 해외에서 직수입된 이론과 패러다임을 놓고 대다수의 학자가 비슷한 연구를 수행했다.

1960, 70년대 권위주의 시대에는 ‘평화연구’라는 표현 자체가 금기시됐다. 한반도가 분단된 상황에서 평화연구는 반공 통일이라는 지배논리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그동안 한국 정치학자들은 힘의 논리를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접근법에 경도된 측면도 있다.

현재로서는 약소국이나 중간 규모 국가의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론의 개발이 시급하다. 강대국 논리에 치우친 연구는 학자들에게 강대국의 정책결정만 바라보아야 하는 데 따른 허탈감을 안겨준 경험이 있다.

또 한반도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을 담아내는 이론적 틀도 요구된다. 과연 북한이 변화했는지, 변화했다면 얼마나 그랬는지를 둘러싼 시각차는 크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구식 이론 틀에 맞춰진 연구보다는 한국적 접근이 필요하다. 아직도 학계에서는 ‘1민족 2국가’라는 한국의 특수성을 놓고 민족 중심이냐, 국가 중심이냐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밖에 한미관계와 같은 국제관계학의 제1주제는 ‘동맹형성’ 및 ‘동맹체제의 변화’라는 두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한국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에서의 새우가 이제는 아니다. 오히려 고래와 공생하는 ‘돌고래’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다. 고래만 쳐다보지 않고, 새우의 처지만 비관하지 않는 돌고래를 위한 한국적 국제관계이론의 정립은 그래서 더 시급하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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