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찾아서]극장 간판…畵工들 애환담긴 '아날로그 상징'

  • 입력 2004년 2월 9일 1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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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

풍경도, 사랑도, 사람도 모두 변한다. 변하는 것이 좋을 수도,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그땐 그랬지’하며 지나간 것들을 곱씹어 보는 것은 많은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관객 100만이 ‘꿈의 숫자’로 보일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1000만도 가능해진 영화산업에서 변한 것들이 무엇일까? 오랫동안 영화 일을 하면서 느낀 많은 변화 중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극장 간판이다.

개봉 날 극장 앞에서 건물 중앙에 떡하니 붙어있는 간판을 구경하는 일은 여간 쏠쏠한 재미가 아니었다. 배우 얼굴과 어쩜 그리 똑같게 그렸는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대단한 솜씨들을 자랑했다. 간판장이들의 ‘내공’에 따라 달라지는 천차만별의 간판들은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를 선사했다. 1980, 90년대 간판계에도 두 명의 명공(名工)이 존재했는데, 백○○와 고○○ 아저씨가 그분들이다. 두 분이 그린 간판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최고의 솜씨를 자랑했다. 당시 서울시내 일류 개봉관의 간판은 모두 다 그 분들 차지였다.

이전에는 개봉 전날인 금요일 저녁에 간판이 걸리는 것을 보기 위해 영화관계자들이 극장 앞에 나가기도 했다. 모두 모여서 간판을 올려다보며 흥행이 잘 되기를 기원했으며, 그림이 아주 잘 그려졌다 싶으면 화공(畵工)에게 술값(?)까지 쥐어 주었다. 배우가 자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즉석에서 고쳐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최상의 애프터서비스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제 그런 풍경은 없다. 간판 그림이 잘 나왔는지 기대할 필요도 없다. 이제 간판 그림은 역사 속으로,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대신 컴퓨터 실사 출력 간판이 내걸리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실사 출력된 간판이 등장한 것은 1989년 서울 강남 브로드웨이 극장에 걸렸던 ‘시실리안’이라는 영화로 기억된다. 이후 크고 작은 극장들이 점차 대형 멀티플렉스로 바뀌면서 극장 간판은 컴퓨터 실사 출력으로 빠르게 교체됐다. 마지막까지 간판그림을 고수하던 극장들도 모두 간판을 내렸다. 그래서 이제는 한 분만이 유일하게 간판장이로서의 명분을 지킨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수(手) 간판 작업과 빠른 시간에 컴퓨터로 실제 사진과 똑같은 간판을 찍어내는 작업이 어찌 비교대상이 되겠는가. 하지만 디지털이 아무리 간단하고 편리해도, 아날로그만이 지닌 향수를 따라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극장 간판은 극장의 상징이었다. 금발의 미녀, 콧수염의 카우보이가 살아있던 꿈의 공간, 신성일과 엄앵란이 수줍게 웃고 있던, 남자들의 로망과 여자들의 동경의 상징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못내 아쉽기도 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극장 앞을 서성이던 빛바랜 극장 간판에 대한 추억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채윤희 올댓시네마 대표·allthat@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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