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32인 32색 '정물예찬展'…당신은 누구인가

  • 입력 2004년 2월 2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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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정물화인가.

32명의 작가가 그린 다양한 정물화가 선보이는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 ‘정물예찬’전은 이 시대 문화현상으로서 몇 가지 화두를 던져주는 전시다.

우선 그림은 역시 ‘손 맛’이라는 새삼스런 자각이다. 기계와 컴퓨터가 노동을 대신하고 미술에서도 비디오, 설치 등의 매체가 확대되는 요즘, 손맛이 묻어나는 캔버스들은 색과 미술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천천히 걸으며 생각하며 전시장을 돌다 보면,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명상 수행이라도 하듯 마음이 가라앉는다.

두 번째로, 20∼30대 젊은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태어난 현대적 정물은 이전에 ‘정물화’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을 거부한다는 것. 예로부터 정물화가들은 하찮은 사물일지라도 우주를 대변한다는 생각으로 그렸다.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담아내는 강력한 은유의 힘이 바로 정물이다. 2004년 오늘을 살고 있는 작가들이 그린 정물화도 똑같은 힘을 보여준다. 다만 그들의 시선이 바깥이 아닌 내면, 남이 아닌 ‘나’로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 정물화와 구분된다.

일민미술관 김희령 디렉터는 “단지 ‘똑같이 그리기’ 차원을 넘어 자의식과 상상력을 담아 표현하는 젊은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업실을 돌아보면서, 이 시대의 화두는 이념 같은 거대담론이 아닌 ‘나’와 ‘일상’임을 새롭게 느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두 섹션으로 나뉜다.

1층에서는 정물화의 기본성격인 ‘재현’에 충실하면서 사물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전통적 민화나 고서(古書)의 이미지를 차용해 독특한 화면을 선보인 박이소씨, 일상의 이야기를 모노톤으로 표현한 황주리씨, 볼품없는 사물들을 드로잉 기법으로 표현해 익숙한 사물들을 낯설게 느끼게 하는 김지원씨, 쓰러진 커피 잔 등 순간을 포착해 공간을 고요하고 긴장감 있게 표현한 정보영씨, 현란한 원색으로 꽃병 책상 우산꽂이 스탠드 등 일상의 사물들을 나열한 김지혜씨, 파 한 뿌리가 시들어 가는 과정을 시간별로 그린 박재웅씨, 머그잔과 커피 봉지들이 줄지어 늘어 선 ‘스타벅스’ 진열장을 그린 노정연씨, 립스틱 하이힐 등을 확대해 여상의 일상을 표현한 한슬씨, 인삼을 우리 몸으로 의인화 한 김은진씨 등의 작품들이 나온다.

또 수묵, 목탄, 파스텔 등을 자유자재로 쓰면서 지필묵(紙筆墨)의 전통적 속성에서 탈피하기 위해 노력한 박병춘씨의 화면에선 새롭게 해석한 동양적 화법이 드러난다. 또 뿌옇고 거친 윤곽선과 흡사 긁어놓은 듯한 김혜련씨의 화면에선 쓸쓸하면서도 깊은 내면적 느낌이 묻어 나온다.

2층에서는 정물적 소재를 조각, 사진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한 ‘팝아트적 정물’이 나온다.스카치테이프, 플라스틱 자를 동물로 패러디한 최진기씨, 형형색색의 약상자 진열대를 찍은 문형민씨, 동전 사탕 머리핀을 사진 찍은 필름에 색을 입힌 김수강씨, 얇은 PVC판을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리면서 병 핸드백 등 정물을 색다르게 표현한 이지은씨의 작품들이 눈에 띈다. 3월14일까지. 02-2020-2065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60~80년대 大家들 작품도 선봬▼

박수근 작 '복숭아'(1957년경)

이번 전시회에는 1960∼80년대 회화 대가들이 그린 전통 정물화들도 ‘특별전’으로 선보인다.

고려대 박물관과 동아일보사 소장품 중에서 선정한 이상범, 박수근, 도상봉, 이마동, 손응성, 문학진 등의 정물화 60여점에는 시간을 뛰어 넘어 공감할 수 있는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박수근의 1950년대 작 ‘복숭아’는 사실적이면서도 작가의 손맛이 담긴 작품. 불상 고가구 등을 소재로 한 손응성의 ‘회도사자서(繪圖四子書)’,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도상봉의 ‘꽃’ 등은 고전과 품격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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