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건축가 김원論 펴낸 이용재씨

  • 입력 2004년 1월 13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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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씨는 “택시 운전사가 힘들지만 건축은 그보다 훨씬 힘든 작업”이라고 말했다. -박영대기자
이용재씨는 “택시 운전사가 힘들지만 건축은 그보다 훨씬 힘든 작업”이라고 말했다. -박영대기자
이용재(李勇載·44)씨는 서울의 택시 운전사이자 건축비평가다.

그의 복잡한 이력은 대충 이렇다. 명지대 건축학과 대학원에서 ‘김중업의 작품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20대에는 필명을 날리는 건축비평가로 살았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아내의 연봉을 앞질러 보자며 30대에 건축 시공에 손을 댔고, 매년 10억원 이상을 손에 쥐며 승승장구하다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았다. 마음을 다잡느라 전국 이곳저곳 다니던 길에 “당분간 집 지으면 안 좋다”는 어느 ‘도사’의 말을 듣고 운전대를 잡았다.

이런 그가 11년간 놓았던 펜대를 슬그머니 다시 든 것은 2002년 8월. 긴 공백기간을 깨고 그가 내놓은 건축비평서는 건축가 김원씨의 작품을 다룬 ‘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 특별히 멋을 부리지 않는 김씨의 모더니즘 건축 경향을 ‘향기 없는 물’에 비유했다.

“사업에 실패한 뒤 가족과 전국을 여행하다 우연히 충남 공주의 황새바위 기념성지에 들렀습니다. 언덕 위에 있는 김원 선생의 건축물을 보니 눈물이 나더군요.”

이씨는 자신이 한국 최고로 꼽는 건축가를 제대로 평가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100만여평에 200여점의 작품을 남긴 김씨 생전에 작품 제작의 뒷이야기를 기록해 둬야겠다는 조바심도 났다.

결국 경기 성남시 분당 연립주택, 서울 성공회 성당, 청담동 조르지오 아르마니 사옥, 남산 한옥마을, 서울종합촬영소 등 김씨의 작품 31점에 대한 평가와 뒷이야기가 특유의 재기발랄한 문체에 담겼다. 1926년 절반만 완공되고 공사가 중단된 상태였던 서울 중구 정동 성공회성당을 1991년 김씨가 마저 지은 이야기도 흥미롭다.

“김원 선생은 서울 도심에 자기 스타일의 작품을 남기겠다는 욕심을 접고 원 설계자인 영국의 아서 딕슨의 70년 전 설계도면을 어렵사리 찾아내고 1920년대의 구형 벽돌을 구해 성당을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했습니다. 비평가들은 ‘아서 딕슨을 베끼기만 했다’고 혹평했지만, 건축가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욕심을 접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이씨는 책을 쓰는 동안 수입이 월 120만원에서 70만원으로 줄었다. 매주 한번은 김씨를 만나 인터뷰하고 건축물을 현장 답사하느라 ‘영업’을 못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다’가 ‘모는’ 처지가 되니 세상이 달리 보이더라”는 이씨는 김씨의 나머지 건축물 이야기를 계속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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