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북회귀선’…1891년 헨리 밀러 출생

  • 입력 2003년 12월 25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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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보헤미안의 도시 프랑스 파리.

돈 많은 은행가의 아내 아나이스 닌. 그녀는 미국에서 건너온 빈털터리 작가 헨리 밀러에게 빠져들었다. 그의 문학적 천재성과 야수와 같은 열정에 그녀의 몸은 달떴고, 둘은 미친 듯 서로를 탐닉한다.

그리고 이들 앞에 나타난 밀러의 아내 준.

‘그녀’는 ‘그녀’에게 첫눈에 매혹되고 만다. 준의 길들여지지 않은 관능과 매력에 사로잡힌 닌. 마침내 준은 닌에게 동성애를 향한 신비의 문을 열어주고….

20세기 현대문학의 한 획을 그은 밀러. 그는 아직도 외설의 혐의를 받고 있는 거의 유일한 대가(大家)다. 그를 세상에 알린 문제작 ‘북회귀선’은 1934년 발표 당시 평단의 극찬을 받았으나 정작 영미권에서는 판금됐다.

현대소설은 D H 로런스와 밀러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직접적인 성행위의 묘사가 이루어졌다.

거친, 격렬한, 적나라한…. 밀러의 성행위 묘사는 마치 ‘장전된 총(銃)의 총구 앞에서 총열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아찔한 것이었다.

그에게 우호적인 이들은 그가 “섹스를 방패로 한 통렬한 문명비평가”였으며 “월트 휘트먼 이래 미국의 자유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평한다. 파격적인 에로티시즘 속에 ‘인간의 가치’를 뛰어넘는 반(反)문명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메시지는 쉽게 감지되지 않는다. “네가 너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은 정말 위대한 일이지. 하지만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묘기(妙技)야. 거기에는 아무런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말이야.”

무명시절의 밀러는 닌의 세례(洗禮)를 거치고서야 마침내 ‘자신의 삶’이라는 커다란 문학적 테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닌은 그에게 육체의 벗이자 영혼의 벗이었고 창작의 불을 지펴준 여인이었다. 그녀는 그의 삶의 허기를 채워주고 그의 삶에 대한 무례(無禮)를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스스로 데카당스한 작가였던 닌. 그녀는 자신의 작품 ‘헨리와 준’을 기꺼이 ‘북회귀선’의 모티브로 제공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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