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넷 키우기]<5>"엄마 나 붙었어"

  • 입력 2003년 11월 18일 16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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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드디어 홈런을 날렸다.

그토록 갈망했던 과학고등학교에 합격의 영광을 안은 것이다. 항상 당당하고 당찬 둘째도 마음을 졸였던 모양이다. “엄마, 나 붙었어”라고 소리치며 연방 두 주먹으로 눈물을 훔쳐내는 걸로 보아.

아이에게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동안 아이가 힘들다고 투정부릴 때마다 과학고를 포기하라고 종용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과학고에 가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둘째는 엄마 아빠가 고3인 언니에게만 신경을 쓰고 자신에게는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게 불만이었다(큰애 주장은 또 다르지만).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집에서는 아이가 과학고에 가겠다면 완전히 상전처럼 떠받들며 집안의 우선 순위를 그 아이에게 둔다. 그리고 엄마는 아이의 전속 운전사로 나선다. 그러나 둘째는 전철을 1시간씩 타고 다니며 학원을 다녔고 자매간에는 시끄러운 아이로 취급 받았다. 또 힘들다고 투정이라도 부리면 엄마 아빠는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회유(?)하기도 했다.

둘째가 과학고에 뜻을 둔 것은 여섯 살 때였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우리가 이사를 온 게 그 무렵이었는데 집 근처에 있는 둥근 지붕을 한 과학고를 보더니 둘째가 소리쳤다.

“엄마, 나 저 학교 다닐래.” 그 날 이후 둘째의 꿈은 과학자로 굳어졌다.

어릴 때부터 수학적인 감각이 남달랐던 둘째에게(중학교 선생님들은 수학천재라고 치켜세우신다) 초등학교 때 수학경시를 시키려고 했으나 아이가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려 그 생각을 접었다. 대신 여러 기관에서 하는 과학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시켰다. 예를 들어 사설기관에서 운영하는 대덕연구단지 탐방에 몇 번씩 보내기도 하고, 과학관에서 실시하는 과학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등 아이가 재미있게 과학을 접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과학고 입시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는 중2 여름방학 때 요즘 집값 상승의 표적이 되고 있는 대치동의 과학전문학원에 등록하고서였다. 과학경시를 통해 과학고 입시를 통과할 의도였다. 아이는 학교를 마치면 전철로 왕복 2시간을 소비하며 학원에 다녔다. 경시를 목전에 두고서는 오전 2∼3시까지 공부하는 날도 비일비재했다. 어느 일요일은 오전 5시에 마치고 나오는 아이를 근처 사우나에 데리고 가 2시간 정도 재운 뒤 다시 아침 8시까지 학원에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드러난 결과만 말한다면 참패였다. 경시대회에 입상을 하지 못하였고 경시 준비하느라 학교 내신을 관리하지 못해 내신 또한 엉망이었다. 게다가 과학고 입시요강이 완전히 바뀌어 내신을 만회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완전히 절망적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였던가. 다행히도 한성과학고를 비롯해 서울과학고, 서울대, 연세대 등 4곳의 영재센터에 다니는 학생들을 위한 정원 외 모집의 길이 열려 있었다. 하지만 영재센터에서 공부하는 400명의 학생 중 과학고 2개교에서 정원 외로 뽑는 학생은 고작 26명에 불과하였다. 둘째에게 일반고 갈 마음의 각오를 하라고 했더니 엄마는 부정적인 생각만 하는 나쁜 엄마라고 투덜댔다.

과학경시 이후 둘째는 집 근처 특목고 입학으로 유명한 학원에 다니면서 구술면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학원에서는 그동안 탄탄하게 쌓아놓은 과학실력이 있으니 수학만 조금 신경 쓰면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고 그리고 적중했다.

돌이켜 보면 둘째는 길을 너무 돌아 왔다는 생각이다. 내신만 잘 관리했다면 쉽게 올 수도 있었던 곳을 험난한 경시의 길을 걸어오느라 아이의 마음과 몸이 몹시 지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는 지금도 조른다. “엄마, 나 과학고에서도 경시하면 안돼?”

조옥남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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