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담]'또랑깡대 콘테스트' 가 낳은 박태오-김명자씨

  • 입력 2003년 9월 25일 16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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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자누나, 나 폼 좀 나재?” “태오야, 시방 누나는 오늘 헐 소리 외워야 쓰겄다.” 20일 오후 제3회 또랑깡대 콘테스트 예선을 앞두고 또랑깡대의 두 스타 박태오씨(왼쪽)와 김명자씨가 소리를 맞춰 보고 있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명자누나, 나 폼 좀 나재?” “태오야, 시방 누나는 오늘 헐 소리 외워야 쓰겄다.” 20일 오후 제3회 또랑깡대 콘테스트 예선을 앞두고 또랑깡대의 두 스타 박태오씨(왼쪽)와 김명자씨가 소리를 맞춰 보고 있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최근 판소리 작품 하나가 인터넷을 유령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이 판소리에는 이도령과 운우지정을 나누는 춘향이도, 남동풍을 부르는 제갈공명도, 공양미 300석에 몸을 내던지는 심청이도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은 판소리와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프로토스’와 ‘저그’. 중년층 이상에게는 생소한 이 말은 인터넷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에 나오는 종족 이름이다.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어허둥둥 내 사랑이지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로다’(춘향가 중 ‘사랑가’에서)만이 판소리인 줄 알았던 젊은이들에게 ‘…삐융 쾅 삐융 뿅뿅뿅…장군 캐논이 있사옵니다…저글링들 캐논 있단 소리에 사지를 벌벌벌 떠는디…’ 하는 판소리는 무엇보다 재미있다.

제목이 ‘스타대전 중 저그 초반러쉬 대목’인 이 판소리는 전주산조예술제 조직위원회가 2001년 개최한 제1회 ‘또랑깡대 콘테스트’의 대상 수상작. 조직위는 이 작품과 콘테스트에 나온 다른 세 작품을 묶어 올해 7월 CD ‘e-또랑깡대’를 발매했고 이를 들은 네티즌들이 ‘스타대전’을 인터넷에 올려 전파했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에서 열린 제3회 ‘또랑깡대 콘테스트’ 예선에 참가한 ‘스타대전’의 주인공 박태오씨(32)와 1회 대회에 ‘슈퍼댁 씨름대회 출전기’(이하 슈퍼댁)라는 작품으로 우수상을 받은 김명자씨(37·여)가 새 판소리를 이야기했다.

●판소리계의 ‘9·12 테러’

박태오씨=98년에 뒤늦게 소리 맛을 알아서 전북대 한국음악과에 들어갔어요. 2001년 9월 12일 졸업연주회 때 창작판소리를 발표하려는데 젊은이들이 듣고 좋아할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스타크래프트를 소재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김명자씨=13년 동안 극단 아리랑에서 연극을 했는데 판소리에 매료돼서 후배들한테 소리를 배웠어. 4∼5년 전부터 술자리에서 TV만화 ‘캔디’ 주제가를 판소리로 부른 ‘캔디 타령’을 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어.

박=고수(鼓手)하는 후배한테 스타를 소재로 사설을 써달라고 했는데 스타를 내가 못 하니까 재미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수업 빠져 가면서 PC방에서 스타를 배웠어요. 그리고 노래를 만들었어요. 그해 미국에서는 ‘9·11테러’가 있었지만 한국 전주에서는 ‘9·12 테러’가 판소리계를 강타했지요.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연주홀에 제가 검은색 롱코트에 선글라스 쓰고 가죽장갑 끼고 군화 신고 등장했더니 교수님들은 “판소리에 서광이 비친다”며 기립박수하고 관객들은 열광하더라고요.

김=2001년에 또랑깡대 콘테스트를 기획한 굿연구소 소장 박흥주 선생이 출전자를 물색하다 우리 극단 김명곤 대표한테 물어본 거야. 술자리에서 내가 했던 ‘캔디 타령’을 기억한 김 선생님이 나를 추천했고.

박=저는 콘테스트가 있다는 걸 알고 참가 신청을 했어요. 나중에 봤더니 당시 참가자들은 다 주최 측에서 부탁해 찾아낸 사람들이더라고요. 그때 명자 누나를 처음 봤잖아요.

김=그래. 내가 1번 ‘슈퍼댁’이었고 태오씨 ‘스타’가 2번이었지. 소리를 하고 나니까 관계자들이 “네가 1등 할 거다” 그러셨는데 대상은 스타가 받고 내가 우수상이었잖아. 솔직히 내가 스타를 할 줄 모르니까 뭔 소리인지 잘 몰랐어.

박=그때 오신 분 대부분이 스타를 모르셨으니 얼마나 악전고투를 했겠어요.(웃음)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관객이 웃고 놀때 진정한 판

김=연극할 때는 내가 무대 위의 꽃인 줄 알았어. 그런데 또랑깡대를 하고 보니 나는 그냥 거름이고 관객이 꽃이더라고.

박=맞아요.

김=관객이 웃고 놀 때 진정한 판이 이루어지는 거지. 나 잘났다고 하는 건 결코 판이 아니란 걸 알게 됐어.

박=무대 위 소리꾼이 주가 아니라 관객이 주가 된 거예요. 제가 처음 ‘스타대전’을 발표할 때 나름대로 진지하게 하려고 했는데 관객들이 와락 웃는 거예요. 그래서 재미있는 컨셉트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관객들 눈높이가 상당하더라고요.

김=높은 정도가 아니라 관객이 왕이라니까.

박=일고수 이명창(一鼓手二名唱)이 아니라 ‘일청중 이고수 삼소리꾼’일 정도예요.

김=사람들이 또랑깡대 판소리를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공감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거야. ‘슈퍼댁’도 그래. 우리 엄마가 김치냉장고를 갖고 싶어 하는데 연극하는 딸년이 무슨 돈으로 사드리겠어. 또 그해 추석 연휴에 TV에서 매일 씨름대회를 했잖아. 그걸 묶어서 김치냉장고를 타길 원하는 슈퍼댁이 씨름대회에 출전하는 내용을 만들었지. 그랬더니 관객들이 너무 좋아해. 오늘 부산에서 온 대학생이 ‘슈퍼댁’을 불렀는데 소리를 잘 못해도 쉬우니까 판에 나와서 하잖아. 그게 또랑깡대 판소리의 힘인 거야.

박=과거에도 창작 판소리가 있었지만 이순신전, 유관순전, 열사가 같은 무거운 소재가 대부분이었어요. 물론 임진택 선생의 ‘똥바다’ 같은 풍자 작품도 있긴 했지만.

김=1회 때 한 화가가 나왔지. 소리는 잘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무대 설치를 하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성의를 다했잖아. 또랑깡대 정신이라는 게 얼마나 판을 놀이로 이끌고 관객과 함께 노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

박=그래요. 광대가 꼭 목으로만 소리를 할 건 아니잖아요. 지금은 온몸으로 표현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시대잖아요.

●또랑깡대는 징검다리

박=사람들은 판소리가 지루하고 따분하고 나이든 사람만 하는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요. 예술성을 따지자면 5바탕을 따라갈 게 없지만 사람들이 듣지를 않아요. 왜냐? 판소리 자체를 접할 기회가 없어요.

김=사람들의 일상에 와 닿으면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판소리를 만드는 게 중요한 거 같아. 그게 또랑깡대의 역할이겠지.

박=맞아요. 사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부르면 훨씬 빨리 판소리를 좋아할 거예요. 하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찾아가서 배울 만한 곳이 없는 게 아쉽죠.

김=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노래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판소리가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뽕짝만큼 다가온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박=그러려면 판소리 한 바탕 전체가 아니라 춘향가 한 대목이나 단가(短歌) 한 곡조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해야 되는데…. 60이 다 되신 분이 “판소리를 처음 들어봤다”고 거리 공연에서 그래요. 이 소리꾼 가슴이 얼마나 무너지던지.

김=명창을 꿈꾸는 몇몇 소리꾼들은 나한테 사설이나 발림 재미있게 하면 판소리가 될 것 같으냐고 하더라고. 성음(聲音)도 안 되면서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거지. 하지만 나는 마차의 두 바퀴라고 생각해. 한쪽은 득음(得音)을 지향하는 소리꾼들이고 다른 한쪽은 대중화로 가는 우리 또랑깡대들이지.

박=저는 또랑깡대의 역할은 징검다리라고 생각해요. 정통 판소리를 듣기 위한 징검다리 말이죠. ‘또랑깡대 소리를 들었더니 재미있더라. 그럼 5바탕은 어떤 소리인지 들어보자.’ 이렇게 차근차근 단계를 밟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인 거죠.

김=그래 결국 두 바퀴는 만나게 될 거야.

박=그럼요.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추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이날 예선에서 박씨는 고스톱을 소재로 한 ‘똥쌍피’라는 작품으로 3위, 김씨는 슈퍼댁이 시댁에서 추석 쇠는 이야기를 다룬 ‘마징가 며느리’로 2위를 했다. 1위는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중학교 한문 교사인 32세의 남성이 차지했다. 본선은 28일 전주 한옥생활체험관에서 열린다. 전주산조예술제 (www.jjsanjo.net)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판소리 용어▼

▽또랑깡대=‘도랑광대’의 센말. 소리 기량이 출중하지 않아 크게 행세는 못하지만 동네 대소사에서 소리를 하던 광대를 부르던 말. 전주산조예술제가 즉흥성과 현장성, 일상의 노래를 강조하는 쉽고 친근한 판소리 보급을 위해 이 말을 사용했다.

▽사설(辭說)=노래로 하는 소리와 말로 하는 아니리의 대사.

▽일고수 이명창=고수 한명이 명창 두 명에 비긴다는 것으로 고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

▽단가=소리꾼이 판소리를 하기 전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짧고 쉬운 노래.

▽발림=소리꾼이 판소리를 하면서 취하는 몸놀림.

▽성음=소리를 하는 데 갖춰야 할 목소리. ‘판소리는 성음놀음’이라는 말도 있다.

▽5바탕=‘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를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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