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포석 人事의 세계]권력기관①-<상>軍인사의 메커니즘

  • 입력 2003년 9월 2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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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경기 성남시 국군체육부대에서 열린 장교 체력 검정에서 한 장교가 안간힘을 쓰며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다. 장교들은 이 체력 검정만큼이나 힘든 진급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3월 21일 경기 성남시 국군체육부대에서 열린 장교 체력 검정에서 한 장교가 안간힘을 쓰며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다. 장교들은 이 체력 검정만큼이나 힘든 진급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모든 결과는 진급이 말해준다.’ ‘수십 년 군생활에 남는 건 계급장뿐이다.’

군 조직에서 진급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들이다. 상명하복과 기수서열을 중시하는 군에서 장교라면 누구나 진급에 귀가 솔깃해지기 마련. 때문에 진급 심사철이 되면 대상 장교들은 백방으로 줄을 대고 소문 하나에 일희일비한다.

외견상으로는 군만큼 체계적인 인사시스템을 갖춘 조직도 드물다. 군의 인사시스템을 구성하는 세 요소는 ‘순환별 보직제’와 ‘진급요소’, ‘인사위원회’.

군 계급별 정년
소령45세
중령52세
대령56세
준장진급 이후 6년
소장진급 이후 6년
중장진급 이후 4년
대장직위진급(2년 임기 뒤 차기보직 받지 못하면 전역)

순환별 보직제란 초급장교 때부터 야전부대와 정책부서를 1∼3년간 번갈아 맡도록 한 것. 군 인사 관계자는 “순환 보직 원칙에 따라 야전지휘관과 정책참모로서의 경험을 고루 쌓아야 진급에서 높은 평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어느 자리에 가든 자신에게 주어진 보직과 관련된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감점요인이 된다.

진급요소란 근무평점 교육성적 경력 상훈 잠재능력 등 인사평가 기준을 말한다. 이 가운데 근무평점이 전체 평가의 약 40%를 차지한다.

진급 여부를 결정하는 최대 관건은 각 군의 인사위원회. 그러나 인사위는 권한이 막강한 만큼 그 구성 등을 둘러싸고 잡음도 적지 않다. 육군의 경우 인사위가 ‘정실(情實)인사’의 근원이고 심사위원 상당수가 육사 출신이라는 군내 비판을 고려, 지난해 하반기 심사실명제를 도입하고 비육사 출신 심사위원을 대폭 늘리는 등 개선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인사에 대한 신뢰도는 여전히 썩 높지 않은 게 현실. 무엇보다 심각한 인사 적체와 특정사관학교 출신 우대에 따른 치열한 경쟁의 부작용이 가장 큰 원인이다.

영관급의 경우 육군 대령은 1990년대만 해도 진급인원이 매년 200명 이상이었으나 수 년 전부터 150∼170여명으로 줄었다. 반면 대령의 연령정년은 53세에서 올해부터 56세로 늘었다.

또 93년엔 영관급의 직업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계급정년을 폐지해 장군 진급에 탈락한 사람이 10년 이상 대령으로 근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현재 40대 중반에 고참 중령급인 육사 38기 이후 세대부터는 위관급이 일반 정부 부처로 전직할 때 특혜를 부여하는, 이른바 ‘유신 사무관제’가 폐지되는 등 외부 배출 통로도 차단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중령 이하 층에서는 인사 불만이 팽배할 수밖에 없다. 육사 38기 출신의 한 중령은 “육사만 나오면 중령은 보장된다는 얘기는 이제 옛말이다”고 말했다.

해·공군의 경우 상황은 더 열악해 2005년부터는 해사와 공사 출신 중 대령 진급자가 30%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육사 출신의 대령 진급비율은 50% 남짓.

해군의 한 관계자는 “한국군 전체 장성의 70% 이상을 육군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해군의 대령 진급은 육군 준장 진급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군 내부에서는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운영 중인 계급 정년제를 부활하거나 기수 서열 파괴 인사를 검토할 때가 됐다는 등의 논의도 고개를 들고 있다.

비사관학교 출신들에겐 이런 푸념도 호강이다. 육사 출신의 경우 94∼98년간 소령에서 중령으로의 진급률은 1.1∼1.6 대 1이었다. 반면 학군 출신은 3.5∼9.7 대 1, 3사 출신은 12.1∼22.3 대 1, 학사 출신은 20.5∼43 대 1이었다. 대령에서 준장으로의 진급률은 육사의 경우 11.4∼14.1 대 1이지만, 학군은 18.0∼49 대 1, 3사는 28.4∼60 대 1이었다.

해·공군의 경우 항해와 조종사 등 특정 병과가 장성급 등 주요 보직의 80∼90% 이상을 독식하고 있어, 타 병과의 장군 진급은 하늘의 별따기인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치열한 진급 경쟁은 각종 부작용을 낳기 마련. 해군의 한 관계자는 “근무평점 상위 10%를 제외하곤 ‘진급 운동’은 필수”라면서 “명절 등 중요 시기마다 지연과 근무연한에 따라 진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관들을 최대한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진급 청탁용 금품 상납 비리가 발생하는 것도 그런 풍토 때문이다.

한 영관급 관계자는 작금의 군 인사 실태에 대해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과거 하나회가 군 조직을 장악했을 땐 한 곳만 확실히 베팅하면 진급과 보직이 보장됐다. 그러나 92년 김영삼 정부의 하나회 숙정 이후 출신 지역과 돈이 적극 개입되면서 장교들은 ‘처세술’에 눈을 떠야만 했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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