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대림미술관 ‘게르하르트 리히터’展

  • 입력 2003년 7월 3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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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생존작가 중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거장으로 꼽히는 독일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71)의 작품이 한국을 찾는다. 2∼3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조망’전은 독일 국제교류처가 기획해 전 세계 순회 중인 전시회로 60년대 사진작품부터 80, 90년대 추상화까지 작가가 직접 고른 작품 27점이 선보인다. 지난달 갤러리 현대가 기획한 ‘독일 현대미술 3인전’에서 소품으로 만나 아쉬움을 주었던 리히터 팬들에게는 30여년 작가의 역정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본격적인 전시회.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의 대표작 ‘베티’에서부터 ‘성당구석’ ‘골짜기’ ‘루디 삼촌’ 등 사진과 회화의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대거 나왔다.

‘베티’는 작가가 1978년 그의 딸을 사진으로 찍고 그것을 10년 후 옮겨 그린 회화로 리히터가 고민해 온 사진과 회화의 연관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작품이다. 화면 속 베티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있지만 고개가 뒤로 돌려져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시선이 닿을 법한 곳에는 아무 것도 없다. 검은 배경 속에 화려한 질감으로 강렬하게 다가오는 베티의 모습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철학적 물음을 제기하는 동시에 추상과 구상, 사진과 회화 등 장르적 경계를 허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전시회 제목을 따온 판화 ‘조망’은 자신을 포함해 서양문화의 초창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양 문화에 족적을 남긴 중요한 예술가, 작가, 철학가, 작곡가, 건축가들의 이름을 도표로 만든 작품이다. 이는 ‘예술가가 역사의 한 부분이며 그 역사 안에서 한 특정 시점에 등장한다’는 그의 확신을 나타낸 것이다.

92년 작 ‘카셀’은 저녁 무렵 카셀의 시가 풍경을 담은 감상적 분위기의 사진을 밑바탕으로 검정과 흰색 유화물감으로 덧칠을 한 작품이다. 덧칠이라고는 하지만 사진바탕 위에 툭툭 눌러 찍은 것이다. 이는 하나의 형태를 이용해 다른 것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환상을 다른 형태의 환상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리히터의 제자로 이번 전시회를 위해 서울을 방문한 마틴 슈미트는 “리히터는 회화와 사진 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었고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작가”라고 소개하고 “그러나 그는 자신을 항상 사진작가가 아닌 화가(der Maler)라고 말해왔다”고 전했다. 리히터는 기존의 틀을 버리지 않고 그 안에 끊임없이 새로운 요소를 넣어 회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왔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200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시작된 이번 순회전은 도쿄와 서울 전시에 이어 베이징에서도 열린다. 02-720-0667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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