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1950년 9월 소요산서 사망"…회고문 입수 공개

  • 입력 2003년 4월 29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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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의 시인 정지용(사진·1902∼?)의 마지막 행적과 관련된 증언 자료가 최근 북한에서 입수됐다.

한국방송대 박태상 교수(48·국문학)는 1993년 북한의 ‘통일신보’에 실린 시인 박산운의 회고문 ‘시인 정지용에 대한 생각’을 일본 조총련계의 조선대 김학철 교수를 통해 입수, 공개했다.

이 회고문에 따르면 서울 돈암동의 정지용 집을 자주 드나들었던 박산운은 1992년 북한에서 중견기자로 일하고 있는 지용의 셋째 아들 구인씨(69)가 보내온 편지를 받았다. ‘길이 막히지 않았더라면 동두천 뒷산 소요산 기슭에 묻혀 있다고 들은 아버지의 유골을 찾아 봉분을 해드리려 했었는데 통분하기 그지없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 구인씨는 박산운과 함께 아버지의 최후를 목격했다는 소설가 석인해 교수의 집을 찾아갔다. 6·25전쟁 당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석 교수는 1950년 9월 21일 문화공작대 임무를 수행하고 북으로 돌아오던 중 동두천에서 정지용을 만났다는 것.

석 교수는 “그날 아침에 동쪽으로 길을 잡고 (정지용과) 함께 오고 있었는데 불시에 미군 비행기가 날아 왔다. 일행을 발견한 비행기는 곧바로 기수를 숙이더니 로켓포탄을 쏘고 기총소사를 가하였다”며 “비행기가 사라진 뒤 정지용을 찾아보니 기총소사에 가슴을 맞고 이미 숨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지금까지 남한에서는 정지용이 1950년 평양교화소(교도소)에 수감 중 폭격으로 사망한 것으로만 알려져 왔다. 북한의 경우 2001년 완간된 ‘조선대백과사전’(전 30권)의 제17권에서 정지용의 사망 원인이나 장소를 밝히지 않은 채 ‘9월 25일 사망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박 교수는 “조선대백과사전에 신채호 한용운 김소월 등과 함께 정지용 시인이 수록된 것은 그의 문학이 북한에서 완전하게 부활한 것을 의미한다”며 “박산운 회고문에도 ‘북의 대학들에서는 선생의 시들과 문학적 업적이 강의되고 있다’고 밝혀 반세기 동안 ‘부르주아적 반동작가’로 북한문학사에 등장하지 못했던 지용의 문학적 복권을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5월 17일 오전 10시 충북 옥천 충북과학대 강당에서 열리는 ‘옥천 정지용문학제’에서 이 같은 주장을 담은 논문 ‘북한문학사에서의 정지용 문학의 평가’를 발표한다. 정지용의 문학을 기리는 ‘서울지용제’는 5월 11일 오후 3시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열린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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