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 입력 2003년 4월 18일 18시 04분


코멘트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박영욱 지음/222쪽 1만3000원 이룸

대중음악은 천박하고 고전음악은 고상한가?

물론 그런 면은 있다. 고전음악은 고도의 전문가가 다양한 화음과 리듬, 대위법과 화성을 이용해 만드는 데 비해 대중음악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몇 안 되는 화음을 반복하며 단순한 규칙을 무의식적으로 따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예술을 이끌어가는 것은 “기존의 규칙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들의 범형이 될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천재들”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작곡가인 쇤베르크와 얼터너티브 록 그룹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비교할 만하다. 쇤베르크가 조성(調性·tonality) 음악의 해체를 통해 기존 서양음악의 체계를 뒤흔들어 놨다면, 코베인 역시 서양음악이 전통적으로 구축했던 장조와 단조의 체계를 넘어 그것을 아예 허물었다는 점에서 음악의 혁명가라고 평가할 수 있다.

게다가 수천만 장의 앨범이 판매되고 전 세계에서 수억 명의 팬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코베인의 영향력은 쇤베르크보다 훨씬 크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이들의 음악에 조금 익숙해진 사람은 서양음악의 전통적 형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또 다른 코베인이나 쇤베르크가 되어 인간이 향유하는 소리의 세계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서양과 한국 포크송의 화음을 분석하고 서태지 음악의 성공과 좌절을 추적하며 보수와 진보의 근본적 의미를 다시 묻고, 칸딘스키의 추상화와 앤디 워홀의 팝아트를 분석하며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또한 영화 분석을 통해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파고든다.

철학으로 대중문화를 읽는다는 이 책은 비슷한 목적을 표방한 기존의 대중문화 분석서들과 분명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기존에 이런 종류의 책들은 대체로 영화의 줄거리나 음악의 가사에 담긴 내용을 분석하면서 그 안에서 철학적 소재를 찾아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이에 비해 이 책은 대중문화의 대표적 장르와 작품을 직접 분석하며 대중문화 자체가 가진 쟁점들이 표출되게 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저자의 치밀한 철학적 분석력은 자연스레 드러난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