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하버드 대학 옌칭 도서관의 한국 고서들'

  • 입력 2003년 4월 4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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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옌칭도서관 한국관이 소장한 ‘제주도여행일지’. 1920년대 일본인 버섯재배업자들의 제주 탐방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근대화 이전 제주의 풍물을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료로 평가된다.사진제공 웅진북스
하버드대 옌칭도서관 한국관이 소장한 ‘제주도여행일지’. 1920년대 일본인 버섯재배업자들의 제주 탐방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근대화 이전 제주의 풍물을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료로 평가된다.사진제공 웅진북스
하버드 대학 옌칭 도서관의 한국 고서들/허경진 지음/347쪽/1만8000원/웅진북스

현직 국문과 교수가 하버드대에서 교환교수로 1년을 보냈다. 강의로부터 해방된 생활 속에서 그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 것은 이 대학 옌칭도서관의 ‘한국관’. 1951년부터 수집된 지하서고의 한국 관련 도서 4000여종 속에 저자는 파묻혀 지냈다.

19세기 관리가 평생 거쳐온 관아들의 그림을 화공에게 그리게 한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 개화기 일본인들의 한국어 교습서, 제주 ‘이재수의 난’을 기록한 ‘이재수실기’ 등 다양한 분야와 주제의 책을 펼쳐보며 느낀 희열과 재미를 저자는 ‘출판저널’에 연재한 데 이어 다시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첫 장에서 소개하는 책은 ‘조선환여승람(朝鮮환輿勝覽)’. ‘동국여지승람’의 체제를 450년 만에 본받아 당시 이미 사라져가던 ‘한지에 목판본’으로 간행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정작 책 내용 자체보다 저자의 흥미를 끈 것은 책 속에 끼워져 있던 수많은 독자의 편지. ‘왜 소생의 조부 이름을 전씨가 아닌 김씨로 적었나요’ 라는 등의 사연은 조상의 영예를 자랑하려고 이 책을 샀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인이 초고 형태로 써내려 간 ‘조선전화잡고(朝鮮錢貨雜稿)’는 진한시대부터 대한제국시대까지 200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돈의 내력이 담긴 원고. 조선조에 ‘기념주화’가 있었던 사실도 엿보인다. 왕실의 경사가 있을 때 주조했던 별전(別錢)이 그것. 구하기 힘들었던 이 돈으로 상류층 부인들은 노리개를 만들어 찼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지적 유희를 엿볼 수 있는 책으로 ‘낙포도정(洛浦都政)’도 눈길을 끈다. 조정에서 관원을 임명한 명부인데, 여기에 천거된 인물들은 모두 중국의 역대 인물들이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최고의 인물’로 상상의 정부를 구성한 것. 성균관 대사성에는 주자가 천거됐는데, 유독 그에게 이 관직을 부여한 이유만이 설명되어 있지 않다. 이유를 대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여겨졌던 탓일까.

최초로 바닷길을 통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기록은 ‘가해조천록(駕海朝天錄)’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다. 후금이 북방을 막자 바닷길을 이용하게 된 것인데, 당시 바닷길이 얼마나 험했던지 죽을 뻔한 고비를 숱하게 겪은 지은이는 ‘내 자손들은 영원히 문관 벼슬을 하지 말라’고 유언했다고 전해진다. 자신이 겪은 고생이 문관 벼슬을 한 탓이라고 여긴 때문이다.

이렇듯 소개되는 옛 책들의 내용도 흥미롭지만, 장마다 ‘여기서 발견된 책을 토대로 새로운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며 저자 스스로 뛰는 가슴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은 일말의 기대감마저 갖게 한다.

옌칭도서관 한국관의 윤충남 관장은 “4000여종의 고서들은 머지않아 해제(解題)가 완료될 것이며, 관련 연구가들의 연구가 획기적으로 촉진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연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고 책머리에 밝혔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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