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준 7단의 결정적장면]여자 정관장배 결승 3국

  • 입력 2003년 3월 14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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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과 장쉬안(張璇) 8단이 맞붙은 제1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는 3판 모두 처절한 싸움이 벌어졌다. 두 여성 기사의 남편들도 프로 9단. 그래서 이 대결을 놓고 ‘18단과 17단의 싸움’이라는 농담이 나왔다. 결과는 루이 9단의 2 대 1 신승. 루이 9단은 세계여자대회 결승에 7번 진출해 모두 우승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기자=왜 여성 기사들의 바둑은 전투적인가요.

김 8단=글쎄요. 대부분의 여성 기사들이 싸움을 즐기는데 평소 성격은 완전히 다릅니다. 특히 성적이 좋은 루이 9단, 박지은 조혜연 3단 등은 여성스럽고 내성적 스타일인데 바둑만은 안 그렇거든요. 그들에게 물어보면 자연스럽게 싸움 바둑을 두게 된다고 해요. 가슴속에 응축돼 있던 에너지가 바둑으로 표출되는 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기자=결승 3판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의 연속이었는데요.

김 8단=여성 기사, 특히 루이 9단은 유리해도 물러서는 일이 드물죠. 결승 3국도 중반 이후 우세를 확립한 루이 9단이 순탄한 마무리보다 상대의 승부수를 응징하려고 하는 바람에 329수까지 길어졌죠.

기자=중반까지 서로 해볼 만한 형세였는데 장면도에서 갑자기 흑이 유리해졌죠.

김 8단=백1이 느슨한 수였어요. 흑2가 눈에 뻔히 보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변 백 2점이 고립돼 백이 나빠졌어요. 백3으로 달아났지만 흑4가 통렬한 급소입니다. 결국 이곳에서 패가 났는데 팻감이 많은 흑이 하변 백을 모두 잡아 사실상 바둑이 끝나버렸죠. 백은 참고도 백1로 둬야 했습니다. 흑은 4로 먼저 살아가야 하는데 백5가 적시타와 같은 수죠. 흑이 백5를 잡으려 하면 ‘가’의 선수를 바탕으로 ‘나’로 밀어 가는 수가 좋습니다.

기자=참고도는 아마추어도 볼 수 있는 그림인데요. 프로가 이렇게 쉬운 변화를 놓쳤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김 8단=저도 가끔 대국에 몰두하다 보면 너무 쉬운 수를 못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건 ‘고정관념’ 혹은 ‘강박관념’의 함정에 빠져서 그래요. 장 8단은 아마 “‘루이 9단의 전투력이 세다. 더구나 하변은 흑이 두터운 곳이니까 백대마를 빨리 안정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참고도 백1을 놓쳤을 겁니다. 상대성이 많이 작용합니다. 장 8단도 다른 기사와 뒀다면 백1을 쉽게 떠올렸을 겁니다.

기자=상대를 의식하지 않는 ‘반전무인(盤前無人)’의 자세를 갖는 것이 쉽지 않군요.

김 8단=‘강자’가 갖는 프리미엄이라는 게 그런 겁니다. 대국 전에 아무리 ‘주눅들지 않겠다’고 결심해도 어느 순간 슬며시 찾아 들어와 머리를 마비시킵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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