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우후루 등정 김태만씨 가족

  • 입력 2003년 2월 9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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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정부로부터 받은 등반확인증 4장을 들고 기뻐하는 김태만씨 가족 -대구=이권효기자
탄자니아 정부로부터 받은 등반확인증 4장을 들고 기뻐하는 김태만씨 가족 -대구=이권효기자
“정상에 올랐을 때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어요.”

지난달 18일 오전 8시 아프리카 최고봉인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꼭대기 ‘우후루’봉(5895m). 고산증으로 얼굴이 퉁퉁 부은 네 가족이 눈물을 흘리며 “우리 가족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올 겨울 우리 가족사(家族史)를 새로 쓰자’며 킬리만자로를 향했던 김태만(金泰萬·45·대구시 달서구 이곡동)씨 일가. 걷고 또 걸어 8일만에 정상에 올라섰다.

“지난해 11월 아침 동아일보에서 킬리만자로 만년설이 지구온난화 때문에 줄어든다는 기사를 봤어요. 평소 아프리카를 동경해왔는데 빨리 가봐야겠다 싶더군요. 아이들이 더 크면 어려울 것 같은 조바심도 들었고요.”

김씨는 이 때부터 부인 이우현(李愚賢·40) 씨, 딸 정민(貞玟·15·이곡중 3년) 양, 아들 창민(昶c·13·성산중 2년) 군과 함께 저녁마다 아파트 주위를 달렸다. 체력이 모자라면 6000m 가까이 되는 높은 산을 오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여름 가족등반으로는 처음 백두산에 오른 적이 있지만 이번 등반은 달랐다.

“아빠가 느닷없이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를 오르자고 했을 때 농담인 줄 알았어요. 외국에 갈 것 같으면 미국이나 유럽을 여행하고 싶었는데 아프리카라니…. 뭐하러 이런 고생을 해야하나 내키지 않았거든요.”(딸 정민 양)

경비 2000만원 가운데 1500만원은 은행에서 급히 대출을 받고 산악인 친구들한테서 등반장비를 빌렸다. 시간, 돈 등 이것저것 따지면 이런 등반은 불가능하다는 게 김씨의 지론.

“빚까지 내면서 꼭 가야하나. 내키지 않았지만, 가족이 뜻을 모으니 그까짓 돈은 나중에 생각하자, 기왕 마음먹은 김에 반드시 해내자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겠다 싶었어요.”(부인 이씨)

대구를 출발한 지 36시간만에 다다른 검은 땅 케냐. 도착 3일째부터 킬리만자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3000m 지점을 지나자 서서히 고산증이 나타났다. 두통 메스꺼움 어지럼증 때문에 한 걸음 내딛기도 힘겨웠다. “이게 무슨 고생이야, 만사 귀찮아, 돌아가버릴까….” 몸은 지치고 머릿속은 한없이 몽롱해졌다.

등반 7일째. 오후 9시부터 4600m 마지막 캠프를 떠나 달빛 별빛을 따라 정상으로 향했다. 부인 이씨의 마지막날 등반일기.

‘드디어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추위와 두통, 졸음이 심해졌다. 아이들 손을 잡고 오르고 또 올랐다. 멀리 거대한 분화구 너머 우후루봉을 마주하니 눈물이 줄줄 흘렀다. 딸 아이가 도저히 못가겠다고 주저 앉았다. “정민아, 어떻게 여기서 포기할 수 있니, 힘내자.” 거대한 빙하계곡과 넓은 분화구 사이로 난 길을 따라 10시간만에 우후루봉을 딛고 섰다. 정상에서 본 거대한 만년설. 가족 모두 얼싸안고 울었다….’

김씨 가족이 선택한 등반로는 다른 코스보다 오르기 힘든 ‘메차메 루트’. 한국인으로서는 가장 어린 나이에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아들 창민 군은 “힘들었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간다면 아무리 높은 산도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최근 탄자니아 정부의 킬리만자로 등정 확인서를 받은 김씨 가족은 또 욕심이 생겼다. “네 가족이 서로 힘이 되던 순간들을 돌아보면 뿌듯합니다. 아무래도 한번더 고산증을 겪어야겠어요. 대출금을 갚는대로 또 준비해볼까 합니다. 다음 목표는 유럽의 몽블랑입니다.”(김씨)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킬리만자로 정상을 앞두고 4000m 고지에서. -대구=이권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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