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수녀님이 띄우는 러브레터", 이해인 새시집 '작은 위로'

  • 입력 2002년 12월 24일 17시 51분


이해인 수녀(57)의 새 시집 ‘작은 위로’(열림원)가 나왔다. 3년 만에 독자들과 만나는 시집이다.

“지난 여름 오랜만에 침방(침실)의 짐을 정리하던 중에 기도처럼 짧은 시들이 나왔어요. 그 시들과 산문집에 실렸던 시들을 함께 묶었습니다.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자그마한 엽서 같은 시였으면 해요.”

전화선을 타고 온 목소리는 청아하고 또 경쾌했다. 그는 세상을 떠난 선배 수녀가 생전에 유언처럼 남긴 ‘작은 위로가 제일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부쩍 가슴에 깊이 와 박힌다고 했다.

‘잔디밭에 쓰러진/분홍색 상사화를 보며/혼자서 울었어요//쓰러진 꽃들을/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하늘을 봅니다//비에 젖은 꽃들도 위로해주시구요/아름다운 죄가 많아/가엾은 사람들도/더 많이 사랑해주세요’(작은 위로)

그의 시는 목마른 이들의 목을 축여주고 상한 마음을 달래주는, 아침 점심 저녁마다 나직하게 읊조리는 기도이며 ‘평화의 다리’다. ‘시는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들을 이해하는 창문이 되어주었으며 모든 관계를 이어주는 아름다운 편지로 이해될 때가 많았습니다.’(자서)

“하느님께서 제게 기도자의 역할을 주셨어요. 세상에 작은 기쁨과 평화를 주는 작은 천사가 되자고 생각했지요. 시가 발 없는 천사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해인 수녀에게는 삶 자체가, 사람 하나하나가 곧 시다. 소박한 시는 그의 일상을 비추는 ‘증언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울해질 때 첨벙첨벙 물소리 내며 빨래도 하고 외롭고 소외된 이웃에게 고운 그림을 곁들인 편지를 쓰는 평범한 생활.

‘넓은 날개를 달고/사랑을 나르는/편지 천사가/되고 싶네, 나는’(우체국 가는 길)

‘우울한 날은/빨래를 하십시오/맑은 물이/소리내며 튕겨울리는/노래를 들으면/마음이 밝아진답니다’(빨래를 하십시오)

이번 시집에는 가까이서 겪은 지인의 죽음과 그 슬픔을 가슴에 묻은 해인 수녀의 사색이 배어나는 시편들도 눈에 띈다.

‘부고를 접할 적마다/나도 조금씩 죽어가는/소리를 듣네’(부고)

‘슬픔을 일으켜 세우는 건/언제나 슬픔인가/ … 실컷 슬픔을 풀어내고 나면/나는 어느새 용감해져서/일상의 길을 걸어 들어가/조금씩 웃을 수 있다’(조시를 쓰고 나서)

“성탄을 맞아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쁘다”는 해인 수녀의 작은 시집에는 해인글방에서 그와 시공간을 공유하는 것들의 사진이 함께 실려 더욱 정겹다. 고운 마음을 가진 이가 크리스마스 트리와 양말을 그려 보낸 조약돌이 방글방글 웃는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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