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동아일보 선정 올해의 책 ´사로잡힌 영혼´ 외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7시 29분



◇사로잡힌 영혼/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빗살무늬

독일 ZDF TV ‘문학 4중주’ 프로그램을 13년이나 진행했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지 문학부장을 16년이나 맡은 독일 비평계 ‘제왕’의 자서전.

책은 3개의 축을 매개로 진행된다. 책의 중반부까지는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서 살아남은 저자의 역정을 기록했다. 영국 ‘더 타임스’가 이 책을 ‘홀로코스트 문학의 잊혀질 수 없는 걸작’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 때문. 후반부는 ‘독일문학의 가장 영향력 있는 교육가이자 흥행사’로 자리매김하는 구서독 망명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와 우정 및 적대감을 교환한 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 등 여러 작가의 일화가 펼쳐진다. 문학을 매개로 진행되는 그의 여성편력도 또 하나의 축으로 흥미를 돋운다. 최근 소설가 마틴 발저가 그를 빗댄 ‘어느 문학비평가의 죽음’이라는 소설을 출간해 라이히 라니츠키는 다시금 첨예한 논쟁과 뉴스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세계화와 그 불만/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세종연구원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저자가 세계화의 부정적 결과에 대해 비판한 가장 최근의 저작. 저자의 비판은 미국이 조종하는 국제금융기관, 국제통화기금(IMF)의 글로벌 경제 정책, 지구를 누비며 펼치는 시장 물신주의적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국제기관 내부의 불투명하고 무책임한 정책수립 및 그 결정 방식에 집중된다.

미국의 패권적 이해를 반영한 국제 금융기관의 경제정책은 보통 탈규제, 자유화, 민영화를 골자로 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로 요약된다. 저자는 이런 글로벌 경제정책이 어떻게, 왜 파괴적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특히 대외 자본시장 자유화와 고금리정책의 위험에 대해 힘주어 비판한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어두운 측면에 대해 깊이 있게 파헤치면서도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 시민이면 누구라도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하게 쓰여졌다”고 이 책의 미덕을 평했다.

◇엘러건트 유니버스/브라이언 그린 지음/승산

이 책은 ‘현대 입자물리학의 최전선’으로 불리는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을 일상적인 언어로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 이론은 우주의 구성요소가 고유의 진동 패턴을 갖는 ‘끈’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그동안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궁극의 입자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본 입자들의 수(數)는 오히려 늘어만 갔다. 그러나 초끈 이론으로 설명한다면 이러한 입자들은 단지 서로 다른 주파수로 진동하는 끈에 불과하다. 마치 바이올린 현(絃) 하나가 다른 진동수로 진동하면서 도, 레, 미 같은 다양한 음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이 책에서는 ‘우주의 근본 원리에 한발씩 다가가는 지적 희열’을 일반 독자들도 공유하게 된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서부터 대통일이론, 초대칭, M이론 등 20세기 물리학의 업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정재승·고려대 연구교수)

◇완당평전 1∼3/유홍준 지음/학고재

우리 역사상 최고의 서예가, 문인화의 거장, 금석학과 고증학의 대가…. ‘추사’라는 호로 우리에게 익숙한 김정희는 그 다양한 면모 때문에 종합적인 접근이 어려운 인물로 꼽힌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친숙한 유홍준 교수가 그의 생애와 업적을 세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완당(阮堂)’은 추사의 또 다른 호.

본보 ‘책의 향기’에 서평을 쓴 소설가 이윤기는 “완당의 평전을 쓰자면 인문학적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아우르고 완당의 파란만장한 삶에 표정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일은 아무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실사구시의 정신으로써, 완당의 견고한 실사구시 정신의 속살을 뚫어내고 있다”고 격찬했다.

신동으로 불리던 유년시절 아버지를 따라가 접한 연경학계와의 교류, 학예의 연찬 과정, 출세와 가화(家禍), 제주도 유배시절, 북청 유배시절 등 완당의 인간적 면모를 생생하게 살렸다.

◇월스트리트 제국/존 스틸 고든 지음/참솔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불리는 월스트리트. 이 책은 350년 미국 주식 시장의 역사를 보여주는 일종의 ‘통사’다.

저자는 오늘날의 명성과 달리 초기 월스트리트는 주가 조작과 사기가 당연시됐던 후진적 시장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랜트 전 대통령까지 끌어들인 금투기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

월스트리트가 난장판을 딛고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J P 모건 등 탁월한 인물과 스스로 잘못된 점을 고치려는 자정 능력 덕분이었다. 시장의 장기적인 안정을 원했던 증권 중개인들이 투기 세력을 잠재울 장치를 만들어 나갔고 월스트리트는 미국 경제가 산업혁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자본을 중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저자는 1980년대 규제 완화와 자유화, 시장화의 이름 아래 다시 ‘탐욕이 미화되는 시대’가 왔다고 분석한다. ‘엔론 사태’는 탐욕의 시대에 곪고 있던 병이 터진 것에 불과하다는 진단이다.

◇전 지구적 변환/데이비드 헬드 외 지음/창작과비평사

‘지구화(Globalization)’란 용어의 보편화는 현대 사회에서 국가 단위의 제도나 사고방식에 근본적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지구화’ 관련 연구성과는 주로 경제와 문화 방면에 치중해 있었다.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한 영국의 사회과학자 네 사람이 모여 ‘지구화’ 관련 연구를 정치, 군사, 무역, 금융, 생산, 이주, 문화, 환경이라는 8개 분야로 확대하고 그 연구시기를 현대로부터 선사시대까지로 확장했다. 이를 통해 개별 영역에서 ‘지구화’가 미치는 상호작용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파생된 ‘지구화’ 자체의 발전 논리를 추적했다.

이런 총체적 연구는 지구화의 단기적 특성과 장기적 추세를 구분하고 지구화의 변화단계를 문명사적 조망 아래서 설정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동시에 역사적 비교를 통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구화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짐 콜린스 지음 이무열 옮김/김영사 펴냄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을 펴냈던 짐 콜린스가 철저한 자료조사와 연구를 토대로 선별한 ‘위대한 기업’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 최근 국내 대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올해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경제 경영서’ 1위로 선정되는 등 큰 호응을 받았다.

‘위대한 기업’이란 GE 같은 초거대 기업보다 규모는 작지만 월등한 실적을 올린 알짜기업들을 말한다. ‘좋은 기업’들은 비전을 중시하고 가혹한 구조조정을 실적을 높이기 위한 주요 전략으로 활용한다. ‘위대한 기업’들은 화려한 전략이나 혁신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강조한다. 그런 기업엔 스타 CEO가 아닌 겸손하면서도 강력한 의지를 지닌 경영자가 있었다.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이 책은 미래의 경영패러다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이영미 지음/황금가지

‘사의 찬미’에서 ‘교실 이데아’ 까지, 대중가요의 가사를 통해 ‘세상 바라보기’를 시도한 책. 저자는 “대중가요야말로 대중의 사회심리와 욕망이 반영된 정신적 산물”이라고 말한다.

처음엔 ‘신세대의 고급 예술’이었던 트로트가 1960년대 이르면서 그 양식이 촌스러워진 이유를 저자는 ‘향유 계층의 변화’에 따라 분석한다. 금지곡과 ‘건전가요’가 등장한 배경, 1970년대 청년문화의 등장과 함께 등장한 ‘포크’의 성격도 세밀한 가사 분석과 함께 읽어낸다.

오늘날의 가요에 대해 저자는 외국어와 욕이 난무하는 가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도 ‘이 시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제 할 말을 노래로 나타낼 수 있는 시대가 왔음’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 밖에 가요와 한복의 관계, 가사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무 이름, 만화 주제곡에 대한 이야기 등 흥미로운 일화와 이를 분석한 글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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