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이별처럼´

  • 입력 2002년 12월 10일 16시 45분


◇이별처럼/쎄르쥬 뻬레즈 글 문병성그림 김주경 옮김/130쪽 6000원 문원(초등 고학년)

충격적인 책이다. 이 책은 ‘당나귀 귀’와 ‘난 죽지 않을테야’와 함께 3부작을 이룬다. 이 시리즈물의 줄거리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못 받는 아이가 나오는 영화, ‘400번의 구타’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한편으론 영화와 비교가 안될 만큼 과격한 비통함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1, 2부는 집에서는 구박덩어리이고,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급우들로부터 학대받던 푸줏간 점원의 아들 레이몽이, 일반학교 부적응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바닷가 특수학교에 보내졌다가 다시 집으로 보내지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이제 역경을 뚫고 레이몽이 우뚝 일어서는 3부를 기대할 법도 했는데 그런 상투적인 기대는 여지없이 배반당하고 만다. 집에 돌아온 레이몽은 여전히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끔찍한 고열에 시달린 끝에 병원에 입원하여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면서 환상과 실재의 세계 속에서 살다 서서히 죽어간다.

이 책에서 읽는 이의 머리를 무엇보다 후려치는 것은 바로 레이몽이 상상 속에서 꾸며내는 이야기의 파격성이다. 상상 속의 아빠는 여전히 푸줏간에서 일하지만 점원 아닌 주인이고 고기 이름뿐 아니라 별의 이름들도 잘 아는 사람이 되고파 하는 인물이다.

반 고흐에 대해 묻는 아이에게 상상 속의 아빠는 마치 살갗이 없는 사람이 비를 맞을 때 아픔을 느끼는 것처럼, 보통 사람에게는 그저 단순하고 정상적인 것들로 보이는 삶의 모습들을 아파했던 사람이라고 설명할 줄도 안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조차 아버지의 모습은 결국엔 완고하고 가학적인 아버지 상으로 귀결되고 만다. 결국 현실 속에서 상처받은 아이에게는 상상 속으로의 도피조차 허용될 수 없다.

작가는 이러한 상상을 통하여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산층 가정의 자기만족적 화목함이란 것도 사실은 이렇듯 허약하고 독선적이고 폭압적인 것임을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게 하니 이 책이 어찌 충격적이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책을 아이들에게 읽혀도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 책, 하면 아무리 이야기 전개상 역경이며 고난을 끼워 넣어도 결국 삶은 그래도 살만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책들을 기대하지 않는가?

그러나 삶은 아름다운 것들로만 가득차 있지 않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 삶의 긍정적인 단면들만 이야기하는 것은, 스스로는 이미 다 커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애어른들로 하여금 아예 어른들을 불신하고 소통의 길을 차단하게끔 하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런 무거운 책들도 읽게 함으로써 삶의 갖가지 폭력성과 비극성에 대해 곱씹어보고 손쉬운 타협이나 해답에 머무르지 않도록 권유해야 하는 것 아닐까? 오히려 그럼으로써 고통받는 너와 나의 연대를 비로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 아닐까?

주미사 동덕여대 강의전임교수·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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