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고위관료 부하직원에 조폭처럼 군림”…임영철씨 행정현장 비판 책 펴내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7시 56분


“한국 고위 관료들이 부하 공무원들로부터 수발을 받는 모습을 보면 가히 ‘조폭(組暴)적 예우 수준이다.”

판사 출신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들어가 주요 국장 등을 지냈다가 올해 봄 공직을 떠난 임영철(任英喆·45·사진) 변호사가 자신이 경험했던 행정현장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 책을 펴내 파장이 일고 있다.

임 변호사가 최근 출간한 ‘넥스트 코리아:대통령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는 ‘묘사의 생생함’에 있어서 그동안 전 현직 공무원들이 펴냈던 책들보다 훨씬 충격적인 내용이 많다.

“한국의 장관은 제왕적 장관이다. 한국에는 장관의 사적인 일까지도 공금으로, 공적 인력으로 모두 돌봐주는 집사들이 있다.”

“국제회의장에서 미리 엘리베이터를 독점해 놓은 뒤 장관이 타면 부하 직원들이 우르르 타는 나라를 보면 영락없이 대한민국이다.”

그는 고위 관료들의 이 같은 행태를 한국 관료 조직의 ‘전범(典範)’인 일본이나 후진국에도 없는 조폭이나 하는 짓이라고 비판한 뒤 고위직의 큰 인센티브인 판공비가 주는 ‘잿밥의 마력’을 아예 없애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행태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같은 후진적인 ‘정부 지배구조’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통령과 장관과의 관계 설정이 왕조시대의 군신(君臣)관계와 비슷하다 보니 국무회의 자리는 대통령의 지시를 기록하는 ‘받아쓰기 시험장’이 된 지 오래다. 대통령이 신(神)이 아닌 이상 대통령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다간 국정(國政)이 꼬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또 ‘일하는 사람은 없고 보고하는 사람만 있는 행정부’, 정책 입안 과정에서 수정자와 결재자의 이름은 빠진 뒤 ‘잘 되면 내 탓’, 잘못되면 ‘모르쇠’로 일관하고 이를 규명하려 하지도 않는 행정시스템도 통렬히 비판했다.

그는 “현행 ‘정부 지배구조’는 잘못된 ‘재벌 지배구조’와 다름없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제 대통령은 헌법에 정해진 권한만을 행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 변호사는 또 기업 등에 대한 정부의 규제조치와 관련해 “애덤 스미스가 말했던 ‘보이지 않는 손’은 한국에서는 바로 정부”라며 “이는 공개적인 관치(官治)경제보다 더 나쁘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의 시장개입은 ‘경쟁의 틀’만 제공하면 되는데도 (정부가)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일을 망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구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나온 그는 81년 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3년 동안 서울지법과 서울고법 판사 등을 지낸 뒤 96년 공정위에 들어가 심판관리관 정책국장 하도급국장 등을 거쳐 올 4월 1급(관리관)으로 명예퇴직한 뒤 변호사로 개업했다.공종식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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