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남성´이 고개들면 그녀는 어깨편다

  • 입력 2002년 10월 24일 18시 22분


비아그라를 판매하고 홍보하는 일을 전문으로 삼은 여성들.왼쪽부터 박천경,양지영,빈진향,최재남씨./전영한기자
비아그라를 판매하고 홍보하는 일을 전문으로 삼은 여성들.왼쪽부터 박천경,양지영,빈진향,최재남씨./전영한기자
하루 온종일 남자의 ‘거기’에 대해 골몰해서 연구하는 여자들이 있다.

한국화이자제약의 양지영(26·마케팅부 주임) 빈진향(28·영업부 사원) 최재남(29·영업부 사원) 박천경씨(31·홍보부 과장)는 남성 발기부전치료제인 ‘비아그라’를 판매하고 알리는 일을 업으로 삼은 여성들. 화이자에서 비아그라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관리직 사원은 100여명. 이 중 네 사람을 포함해 30여명이 여자다.

양씨와 빈씨, 최씨는 서울대 약대 동문. 박씨는 서울대 농가정학과와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을 졸업했다. 명문대에서 약에 관해 공부한 전문가들인데다가 젊은 여성들인 이들이 서슴없이 음경, 발기 부전, 오르가슴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남자 의사들조차 당황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그들의 실무 현장은 남자들의 호기심 섞인 관심이 개입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프로페셔널하다.

비아그라에 대한 마케팅 플랜을 총괄하는 프로덕트 매니저(PM·Product Manager) 양 주임은 철저한 제품 분석을 위해 입사 초기 직접 비아그라를 먹어봤다. 물론 현재 시판 중인 비아그라는 모두 ‘남성용’. 남자들이 비아그라 복용 후 40분이 지나면 얼굴에 홍조를 띠며 음경에 피가 몰리는 증상을 보이는 것처럼, 양 주임도 얼굴이 불그스레해지며 신체 아래쪽의 혈압이 높아지는 것을 체험했다. 남성용 비아그라가 여성에게 미치는 효과는 의학적으로 아직 입증된 바 없다. 그러나 양 주임은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을 통해 비아그라 효과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양 주임의 비아그라 복용은 그러나 ‘아주 특별한’ 예. 회사측은 비아그라 제조공장 내부 곳곳에 폐쇄회로 TV를 설치해 직원들의 비아그라 외부 반출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어 사내에서조차 비아그라를 구경하기 힘들다.

“비아그라 로고가 크게 새겨진 판촉물이나 책자를 한아름 안고 병원에 가면 낯 뜨거울 정도로 남자 환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게 돼요. ‘비아그라를 구할 수 있나’, ‘좀 싸게 살 수 있느냐’고 쫓아와서 묻는 환자들도 많아요.” (최재남씨)

빈씨와 최씨는 비아그라 영업의 최전선에서 일한다. 빈씨는 지난해 결혼했지만 최씨는 아직 미혼. 하루 10명 이상의 의사들을 만나 제품에 대해 열을 올리며 설명하다 보면 “시집도 안 간 처녀가…”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비아그라 영업의 대상인 비뇨기과 의사 대부분은 환자에게 처방전을 내리기 위해 자신이 직접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있거나 복용한 경험이 있다. 의사들이야말로 비아그라의 ‘실제 수요자’이자 ‘오피니언 리더’인 셈.

빈씨와 최씨는 영업사원으로서 의사들과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의해 늘 고민한다. 항상 깔끔한 정장 차림에 단정한 헤어 스타일을 갖춰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고, 배가 출출해질 만한 시간에 병원을 방문하면 인근 제과점에서 간식을 사 가는 일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술과 골프 접대는 영업부 방침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다.

비아그라는 1998년 출시됐다. 국내시판은 2000년부터. 지난 4년 동안 115개국에서 1700만명의 남성들이 약 7억1500만개를 복용, 제조회사인 다국적기업 화이자제약에 약 15억달러의 수익을 안겨줬다. 올 초부터는 국내에 경쟁제품인 한국애보트의 ‘유프리마’가 선보였고 한국릴리의 ‘시알리스’와 바이엘코리아의 ‘발데나필’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비아그라의 홍보를 담당하는 박 과장의 고민은 비아그라와 직접적으로 관련 여부가 검증되지 않았는데 비아그라 부작용으로 몰아가는 것과 시중에 유통되는 가짜 비아그라, 두 가지로 요약된다.

박 과장이 알려주는 ‘진품 비아그라’ 판별법에 따르면 먼저 국내에서 정상 판매되는 비아그라는 병이나 플라스틱 용기가 아닌 박스에 들어 있다. 종류는 25㎎, 50㎎, 100㎎ 등 용량이 다른 세 가지. 파란색 다이아몬드 형태의 비아그라가 두 개씩 들어 있는 포장에는 ‘화이자’ 로고와 ‘비아그라’ 로고가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홀로그램도 반드시 부착돼 있다.

화이자제약에 근무하는 필리핀계 미국인이 제안한 비아그라(Viagra)라는 이름은 필리핀 토속어인 타갈로그어 ‘바이그’(고환)의 복수형인 ‘비아그라’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정력이 왕성한’이란 뜻의 영어단어 ‘vigorous’와 나이애가라폭포의 ‘Niagara’의 합성어라는 일부 해석도 있다.

거센 기세로 물줄기를 쏟아내는 나이애가라 폭포의 힘은 남자들의 이상. 그러나 서울대병원 비뇨기과 백재승 교수가 99년 대한비뇨기과학회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 40∼79세 남성 10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2%가 발기부전이었으며 이 중 3.3%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답했다.

“비아그라는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구입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에요. 그런데 상당수 남자들이 남자 의사에게조차 자신의 발기부전에 대해 상담하기를 꺼리죠. 남편을 대신해 아내들이 문의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의사들이 ‘당신은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고 있는데 혹시 성생활에는 문제가 없습니까’라는 식으로 먼저 물어 환자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는 실정이죠.”(빈진향씨)

비아그라는 40대 후반 이상 남성들의 성고민을 상당부분 해소했다. 그러나 양지영 주임은 “비아그라를 몇 년째 복용한 80대 남자 환자의 부인이 남편의 강력한 ‘힘’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남편을 받아들이기에 70대 부인의 신체적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노령화사회의 길목에서 여성용 비아그라의 개발이 시급하다는 설명이었다.

결혼 10개월차인 빈씨의 얘기는 ‘비아그라와 함께 하는 여성’들의 일상을 요약하는 듯하다.

“남편조차 ‘제 아내는 비아그라 팔러 다녀요’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일하다 보면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까맣게 잊게 돼요. 인간의 행복한 성생활과 진정한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고, 거창하기는 하지만 문득문득 인류애적 사명감도 들어요.”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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