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눈]정옥자/문화재 전문가 찾습니다

  • 입력 2002년 9월 1일 18시 21분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종이는 당시의 세계라 할 동아시아에서 가장 질이 좋은 고급지여서 중국에서 조선 종이는 인기품목이었다.

당시 국제무역이라 할 수 있는 조공관계에서 중국에서 가져오는 물품 중 우리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품목이 고급정보가 담긴 책이었다면, 중국이 가장 선호하는 품목은 종이였다.

특히 명경지(明鏡紙)는 이름 그대로 거울처럼 말갛게 비칠 정도로 얇으면서도 질겨 사랑을 받았다. 생산기술이나 질적인 면에서 당대 최고였기 때문이다.

그 종이의 종류도 다양하고 재료도 닥나무 뽕나무 소나무뿐만 아니라 귀릿짚 보릿짚 왕골 등 여러 가지 풀을 이용했다. 그러한 종이로 만든 서책(書冊)이 현재 규장각에 많이 소장되어 있는데 200∼30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어제 만든 듯 생생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의 손을 전전하며 때가 묻거나 훼손된 경우도 적지 않아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자료를 더 이상 손상되지 않게 하면서 원래대로 복원 수리해 보존할 수 있을지 궁리하게 된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씩은 방충(防蟲)을 한다. 보통 2주일은 걸리는데 그 후에도 독가스가 남아 있어 1주일 정도는 사무실에서도 코가 막히고 눈이 쓰리며 목이 아픈 증세를 감수해야 한다.

서고에서 책을 출납해야 하는 담당자의 고충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또한 종이가 좋아하는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원본을 함부로 내돌리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쓴다.

원본을 확인해야 하는 서지학자 이외에 책 내용만 관심 있는 열람자에게는 복사본이나 영인본, 또는 마이크로필름 등을 제공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때로는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보관 장소 문제이다.

조선시대는 목재건물이었고 현재는 시멘트 건물이다. 조선시대는 자연 통풍이었지만 현재는 기계로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게 되는데, 이것이 한지로 된 책에 합당한지 가끔 의문이 제기된다.

공해가 극심한 이 시대에 자연통풍은 별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서고를 지하에 두는 것이 전쟁 등 유사시에 대비하고 햇빛을 차단하는 데 유리하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조선시대처럼 지상에 두고 그때처럼 정기적으로 포쇄(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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