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상상력의 잔치 '제49회 칸 광고제'

  • 입력 2002년 6월 27일 16시 28분


'club 18-30' 광고. 싸치앤싸치 런던 제작. 프레스 부문 대상
'club 18-30' 광고. 싸치앤싸치 런던 제작. 프레스 부문 대상
《제49회 칸국제광고제가 17∼24일 프랑스 남부도시 칸에서 열렸다. 세계 광고업계 최대의 이벤트에서 드러난 ‘이미지 창조의 현 주소’를 위크엔드 에디션 ‘광고 속의 에로티시즘’ 필자인 광고평론가 김홍탁씨(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현장 취재했다. -편집자-》

올해 다이렉트 부문이 신설됨으로써 시상 부문은 필름, 프레스/아웃도어, 사이버, 미디어 분야를 포함해 5개로 늘었지만 출품작은 작년의 1만9013편보다 줄어든 1만7247편이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반영된 셈이다. 그러나 크리에이티브의 패기나 신선함마저 위축된 것은 아니었다.

올해도 관심은 필름, 즉 TV광고와 프레스/아웃도어로 분류되는 인쇄광고 양대 부문에 쏠려 있었다. 예전처럼 유머광고가 호응을 얻었음은 물론이다. 대개 대상 수상작을 통해 트렌드를 가늠하곤 하는 선례를 따른다면 올해 칸을 장식한 인쇄부문의 크리에이티브는 에로티시즘과 그로테스크라고 말할 수 있는 ‘악취미 유머’에 모아졌다.

인쇄 부문의 대상은 7일자 ‘광고 속의 에로티시즘’에 소개된 여행 클럽 ‘club 18-30’에 돌아갔다. ‘club 18-30’의 컨셉트는 섹스다. 특히 20대 젊은층을 타깃으로 설정하여 그들의 성감대를 자극하는 광고로 일관해온 ‘club 18-30’에 대상이 주어졌다는 것은 ‘젊고 영감이 가득찬’ 크리에이티브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는 심사위원들의 심중을 대변한다.

'오슬로 피어싱' 광고. 레오버넷 오슬로 제작. 아웃도어 부문 대상

대상 선정 과정에서 열띤 논쟁이 오갔다는 뒷말이 들리는데, 9·11 테러 이후의 정신적 공황기에 이런 류의 광고에 대상을 줄 수 없다는 의견이 미국 측 심사위원으로부터 제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럽 측은 단호했다. 도덕적 엄숙함이 광고에까지 스며드는 것을 거부했고 오히려 ‘club 18-30’ 같은 광고에 대상을 줄 수 있음에 안도했다는 것이다.

이 클럽을 통해 여행 온 젊은이들의 실제 목적은 섹스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는 이 광고의 진실성을 알릴 수 없었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다시 말해 단순히 눈길을 끄는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라 서비스의 속성을 제대로 전달하는 크리에이티브로 승부했다는 점을 높이 산 것이다.

'코코드메르' 광고. 사치앤드사치 런던 제작. 프레스 부문 금상.

‘club 18-30’ 광고는 필름 부문에서도 금상을 차지했다. 화면엔 온갖 종류의 개들이 섹스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재미있는 것은 오럴 섹스에서부터 다양한 체위의 섹스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벌이는 섹스 장면을 개를 통해 보여 준다는 점이다. 성적 욕구의 충족에는 인간이 개와 다를 바가 없다는 메시지를 유머에 담아 던져 놓았다. 너무나 노골적이기에 다소 거부감도 들지만 개들이 인간의 섹스를 흉내내는 장면은 수많은 박수와 웃음에 값할 만했다.

젊고 영감에 찬, 그리고 엽기적인 성향의 크리에이티브는 아웃도어 부문 대상에서도 확인되었다. 올해부터 대상이 신설된 아웃도어의 영예는 ‘오슬로 피어싱 스튜디오(Oslo Piercing Studio)’에 주어졌다. 트럭이나 담벼락에 박혀 있는 대못이나 쇠고리에 혓바닥, 귓불, 눈두덩이를 클로즈업한 사진을 꽂아 넣음으로써 마치 실제로 피어싱된 것처럼 느껴지게 한 이 광고는 옥외물의 특성을 적절히 활용한 예로 극찬을 받았다.

'햄릿시가' 광고. 시디피 런던 제작. 프레스 부문 금상.

이 밖에도 오르가슴에 도달한 인간 군상의 얼굴을 담은 ‘코코드메르’ 에로틱 숍 광고(21일자 ‘광고 속의 에로티시즘’ 참조)와 난쟁이를 등장시켜 작은 사이즈의 시가가 출시됐음을 알리는 ‘햄릿 시가’ 광고 역시 좋은 취향에 대한 역반응을 드러냄으로써 금상을 건져 올렸다. 특히 ‘햄릿 시가’는 ‘흡연은 치명적인 질병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경고문을 의도적으로 크게 처리하여 마치 광고에 등장하는 난쟁이가 그 메시지의 피해자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지적이고 세련되었지만 냉소적 웃음으로 가득 찬 영국식 유머 광고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죽어 자빠진 말버러 맨의 말을 통해 간접흡연의 폐해를 표현한 공익광고는 일련의 계속된 말버러 패러디 광고의 정점을 보여주면서 금상을 차지했다. 동상을 받은 상어 지느러미 수프를 먹지 말자는 내용의 공익광고는 한 번의 결혼 피로연을 치루는 데 수많은 상어가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인간의 결혼식과 상어의 장례식이 교차하는 엽기적인 그림 한 장에 담았다. 각각 인도와 싱가포르에서 제작된 두 광고 모두 동물의 죽음이라는 같은 형식을 통해 다른 공익성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아시아권 크리에이티브의 잠재력을 보여 주었다.

간접흡연 공익광고. 오길비 앤 매더 뭄바이 제작. 아웃도어 부문 금상.

TV광고인 필름 부문에선 나이키가 기세를 드높였다. 치기 장난(tag)/그림자 밟기(shade running) 두 편이 시리즈로 출품되어 전편이 대상을, 후편이 금상을 차지했다. 마음 속에 내재해 있는 어린 시절 놀이에 대한 향수를 운동에 접목시킨 이 광고는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란 기존의 컨셉트를 ‘놀이(play)’로 발전시킨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태그 편은 기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기자상과 탁월한 배경음악에 주어지는 음악상까지 함께 거머쥐었다.

상어지느러미 수프 공익광고. 사치앤드사치 싱가포르. 프레스 부문 동상.

올해도 영예의 사자트로피를 품에 안은 작품들은 예외없이 아이디어의 담금질에 노력을 쏟은 흔적이 역력했다. 트로피의 색깔이 황금색에 가까워질수록 예기치 못한 반전과 사물의 속성을 제대로 활용한 비유들이 눈에 띄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질 높은 크리에이티브를 일상에서 즐길 수 있다는 데 있다. 광고의 질 차이가 국민의 사고 수준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그렇다.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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