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간 도보수행 원공스님에 들어보니…

  • 입력 2002년 2월 22일 18시 01분


“뜻은 무슨 뜻이야. 그냥 걷고 있는 거지.”

지난 24년간 1년의 절반 이상 만행(萬行·여행을 통해 수행하는 것)을 하면서도 한번도 차를 타지 않은 스님.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無門關)의 마지막 수행자 원공(圓空) 스님이다.

이른바 무문관 수행법은 한번 수행을 시작하면 몇 년이고 바깥 세상을 피한다. ‘이 자리에서 깨치지 못한다면 일어서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화두에 정진하는 한국 선(禪) 불교의 상징이다. 아예 출입을 못하게 입구를 막기도 한다.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온 이 수행법은 64년 정영 스님이 천축사에 참선수행도량 무문관을 세우면서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곳은 원공 스님을 끝으로 무문관 수행자가 없어 주말에만 시민 선방으로 개방하고 있다.

원공 스님은 79년 6년간의 무문관 수행을 마친 뒤 ‘걷는 스님’이 됐다. 155마일 휴전선 순례, 통일기원 180일 국토순례, 통일염원 북한 농민을 위한 비료지원모금 123일 백두 대간 종주 등 여러 차례 보행 기도를 해왔다.

그는 28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을 출발해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개최 도시 20곳을 걸어서 순례하는 ‘환경과 평화를 위한 평화도보 행진’을 갖는다. 총 4000㎞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무문관 석조 3층 건물의 구석진 방에 머무르고 있는 그는 21일 오후 한 보살의 안내로 도봉산 입구에서 1시간여 산행 끝에 무문관에 들어서자 ‘어허’ 웃으면서 “비도 오는데 여기까지”라며 자리를 권했다. 2평 남짓한 스님의 방에는 별로 사람의 눈을 막아서는 게 없다. 좌대 겸 침대로 쓰는 평상과 책상, 물기를 말리기 위해 바닥에 놓은 수건 2장이 달랑 있을 뿐이다.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

그리고 벽에 걸린 한국 지도와 구석의 라면 박스에 담긴 도라지 씨앗들. 그의 20여년에 걸친 도보수행의 ‘길벗’이리라.

“난, 월드컵을 세계배로 불러. 세계배는 사람이 너무 많이 모이는 행사야. 나무 한 그루는 산소가 한 말(斗)이고, 건물 한 채는 제아무리 잘 지어도 공해가 한 말(斗)이지. 개최 도시를 걷는 것은 이 대회가 인간과 환경을 위한 행사가 되기를 바래서야.”

스님의 방에는 불이 없다. 오후 5시가 조금 지났는데 산 중턱이어서인지 방안이 벌써 어두어둑해진다.

“한 10년전쯤 될까. 불이 나간 적이 있는데 그 뒤 아예 전기 없이 지내. 한밤 스며드는 달빛이 얼마나 밝은 지 몰라.”

왜 스님은 무문관 수행 뒤 ‘길’을 택했을까.

“수행 뒤 세상을 보고 싶었지. 차 타지 않고 내 육신 두다리로 말이야.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왔어. 옛날 길은 참 자연친화적이지. 산이나 개울이 있으면 돌아가. 한데 요즘에는 길을 만든다고 산을 뚫어버려. 그러니 산도 사람도 다 잃는 거지.”

그는 도보 수행을 하는 한편 가는 곳마다 쓰레기를 캐고 도라지를 심어왔다. 도봉산을 오르다 자연스럽게 그의 도라지 심기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 ‘산에 도라지 심는 사람들’이란 모임이 생기기도 했다.

“처음에 누가 그러더군. 도라지 심으러 왔는데 왜 쓰레기를 캐게 하냐구. 줍는 것도 아니고 캐는 것이니. 하지만 바로 쓰레기 캐는 마음이 도라지 심는 마음이야. 환경과 통일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모든 이들이 그만큼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그는 길에서 만나는 불자들이 여비를 주면 꼬박꼬박 모아 북한 사람들을 돕는 모임 등에 보내왔다.

“걸어다니는 중이 무슨 차비가 필요하겠어(웃음). 길 위에서 사람과 만나고 세상을 보면서 배우는 게 많아. 특히 관공서와 종교 단체 건물이 왜 그리 큰지. 관공서를 세우는 돈은 세금이고 종교단체는 헌금일 텐데. 작을수록 좋지. 남들은 나를 ‘기인’으로 생각하지만 난 중답게 살고 있어.”

‘산에…’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인터넷(http://cafe.daum.net/wongong)에 그와 관련된 사이트를 개설했다. 원공 스님과의 접촉이 쉽지 않아 한 회원이 대신 연락(016-479-4790)을 받아 전하고 있다.

김갑식 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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