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러시아 음악을 찾아서]100년 넘은 음악원서 인재양성

  • 입력 2002년 2월 5일 17시 49분


“러시아가 최고의 음악문화를 가지게 된 것은 높은 수준의 체계적인 음악전문 교육제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5세에 시작하면 17세에 이미 전문 연주가로서의 소양을 갖추게 되죠.”

1월 10일 오후 모스크바 니키츠카바 거리에 위치한 러시아 문화성 장관실. 푸틴 대통령 취임때부터 러시아 문화계의 수장을 맡아온 연극인 출신 미하일 쉬비드코이(52) 장관은 해박한 지식으로 1시간이 넘게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93년 이래 문화성 차관, 국영 TV의 사장으로 재직한 그는 현재 러시아 내에 몇 개의 교향악단이 있는지, 국가의 지원액수는 얼마인지 숫자 하나하나까지 소상히 꿰고 있었다.

그는 어려운 경제 상황아래서 우수한 음악가가 외국으로 더 이상 빠져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지원한다는 것이 올해의 주요 사업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7억 달러의 예산이 지방 교향악단과 음악단체에 배정됐다. 열악한 우리 지방 음악계의 현실이 떠올랐다.

러시아 음악이 세계 음악계의 중심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19세기 후반부터 음악원을 중심으로 체계화된 고품질의 음악교육이 있었다. 그 양대 축은 1862년에 세워진 러시아 최초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과 4년 뒤 탄생한 모스크바 음악원이다. 15개의 음악원을 받쳐주는 6000여개에 달하는 ‘슈콜라’(초등음악학교)와 260개의 ‘우칠리쉬’(중등음악학교)는 음악의 저변이 얼마나 넓은가를 보여준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모든 연주가와 작곡가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왔습니다. 모스크바 음악원이 현재 높은 수준의 교수진과 학생들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지도자’적인 위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79년부터 음악원장직을 수행해온 체르누센코(65)는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들은 많은 시간을 외국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내지만 페테르부르크 음악원 교수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국내에서 제자 교육에 전념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비해 음악이론을 전공한 모스크바 음악원장 소콜로프(53)는 1년 전에 취임했다며 보다 젊은 기운으로 충만한 음악원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피력했다.

“교내에 있는 볼쇼이홀과 말리홀은 위대한 예술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뛰어난 교수진을 확보하고 있어요.”

최고 수준의 음악학교에서 한국 학생들도 정진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120명, 모스크바 음악원에 40명의 유학생들이 재학중이다.

1월 9일 상트 페테르부르크 카펠라홀에서는 전통의 카펠라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새해 첫 연주회가 있었다. 지휘자는 음악원에서 체르누센코를 사사하고 연주박사 과정 중인 한국인 이재경. 리스트의 교향시 ‘전주곡’과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1번을 뛰어나게 해석해 갈채를 받았다. 1월 5일 세레메테프 궁전에서 독주회를 가진 피아니스트 정진아는 뛰어난 음악성으로 주목을 받았다. 모스크바에 10년째 거주하는 피아니스트 안미현도 학구적인 연주자로 칭찬이 자자했다.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한 베이스 황상연은 지난해 11월 막심 미하일로프 국제 오페라 축제에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초청되어 노래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만난 임동민·동혁 형제 피아니스트는 말할나위 없이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스타다. 작년, 롱티보 국제 콩쿠르 우승으로 유명세를 탄 임동혁은 한국 공연 후 다소 초췌한 모습이었다. 인터뷰 공세에 시달린 그는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조용히 지켜봐 주는 것이 그를 진정한 대가의 길로 가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 음악의 오늘이 있게 된 것은 확고한 교육제도와 전 국민의 관심 그리고 정부의 합리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스크바 주재 한국 대사관 직원이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러시아의 문화적 정체성을 발전시켜 가는 문화부야말로 국가 ‘안보기관’ 중 가장 확실한 부처라고 이곳 사람들은 믿고 있습니다.”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비전문인 출신의 우리 문화관광부 장관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차례로 그려졌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방송작가

poetandlove@hanmail.net

◎러시아 양대 고등음악기관 비교

명칭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 모스크바 음악원
설립연대 설립자 1862년 안톤 루빈슈타인 1866년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안톤의 동생)
현 원장 블라디슬라브 체르누센코(65) 동음악원에서 합창지휘 전공 미하일 소콜로프(53) 동음악원에서 음악이론 전공
학제 5년제 6부(피아노, 관현악, 성악, 연출·지휘, 민속음악, 작곡·음악이론) 5년제 6부(피아노, 관현악, 음악이론·역사, 작곡, 합창지휘, 성악)
주요 졸업생 차이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작곡) 므라빈스키 게르기예프(지휘) 라흐마니노프 하차투리안 스크리아빈(작곡) 리히테르 길렐스(피아노) D.오이스트라흐 코간(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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