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모자가 좋아]"멋스럽고 여유로운 남자의 친구"

  • 입력 2002년 1월 24일 15시 53분


85년 이탈리아 밀라노로 유학을 떠났던 홍익대 강병석 교수(섬유미술과·사진)는 ‘볼사리노’ 모자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볼사리노’는 이탈리아 고급 모자 브랜드 가운데 하나. 마피아 영화에 자주 등장해 우리나라 ‘용 문신’이나 ‘검은색 고급 자가용’처럼 ‘조폭’을 상징하는 문화 코드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선지 한국에 돌아온 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딸은 “친구가 아빠 모자 보고 ‘너네 아빠 이탈리아 갱이었냐’고 물어서 창피해!”라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가난한 유학생 신분이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이 멋스럽게 쓰고 다니는 게 부러워 하나 구입했죠.밀라노 북부에 살 때는 습하고 냉기 서린 날씨 때문에 꼭 필요했었고….”

강교수는 “모자는 특히 남성들의 권위와 여유 그리고 개성을 표현해주는 멋진 친구”라고 표현한다.

“옛 영국 신사들이 즐겨썼던 키 큰 모자(톱햇·top hat)나 크기에 따라 구분되는 이슬람 문화권의 터번이 전형적으로 신분을 나타내 주는 모자죠. 영국 상류사회의 사교클럽에서 현대 모자 문화를 발전시켰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이후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카우보이 모자나 야구 모자(캡)처럼 기능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바뀌었지요.” 유학시절 현지 친구들에게 들은 농담 반 진담 반 한마디. “야구모자쓰고 관광 다니는 사람은 필리핀 사람하고 한국 사람 밖에 없는 것 같다.” 한국인들이 모자의 ‘모양(form)’과 ‘기능(function)’ 가운데 후자만을 중시하는 미국 문화를 추종한다는 비아냥이었다.

강교수의 모자에 대한 애정은 몇 해 전 경찰 모자를 주제로 논문을 썼던 일, 지난해 보이스카우트 복장에 카우보이형 모자를 추가시킨 일 등에도 잘 묻어난다.

“지금은 머리를 기르는 중이라 자주 쓰지는 못하지만 지금까지 사 모은 20여개의 모자 하나 하나에는 추억과 사연이 담겨있어요. 40대 남자가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꿈을 머리에 이고 사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멋진 스타일의 모자 하나 쓰고 살 만한 여유 정도는 찾아야겠지요.”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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