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至孝(지효)

  • 입력 2001년 11월 18일 18시 26분


至孝(지효)

至-지극할지誠-정성 성醉-취할 취 逸-숨을 일 獨-홀로 독端-끝 단

‘孝는 百行之本(백행지본)이라 하여 인간처세의 모든 행위 중 가장 중시되었던 德目(덕목)이다. 철저한 가족위주의 사회였던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孝를 강조했던 것은 당연했다. 至孝라면 ‘지극한 孝誠’이다. 일명 ‘大孝’라고도 하는데 오늘은 至孝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新羅 때 孫順(손순)은 집이 가난해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 어머니를 봉양했다. 그런데 아들이 하나 있어 늘 어머니 잡수시는 것을 빼앗아 먹자 아내와 상의했다.

“아들 때문에 어머니가 제대로 잡수시지를 못하고 있소. 아들이야 또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구하기 어려우니….”

하고는 아들을 업어다 취산(醉山) 기슭에 묻기로 했다.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데 이상한 물건이 나왔다. 알고 보니 石鍾(석종·돌로 만든 종)이었다.

“이건 틀림없이 아이의 福(복)이니 묻어서는 안되겠소.”

하고는 다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후에 鍾을 대들보에 달고 두드렸더니 얼마나 멀리 퍼졌는지 왕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사신을 보내 조사를 시킨 왕이 말했다.

‘옛날 郭巨(곽거)가 아들을 묻었을 때는 黃金의 종이 나왔다. 이제 孫順이 石鍾을 얻었으니 이 어찌 感天(감천)이 아니겠는가.’

하면서 집 한 채와 함께 매년 쌀 오십 섬을 내렸다고 한다. 至孝의 예는 이 밖에도 많다. 증자(曾子)는 孔子의 3000 弟子 중에서도 首弟子(수제자)로 꼽힌다. 다소 둔하기는 했지만 효행(孝行) 하나만은 뛰어나 孔子가 더욱 가르침을 주어 孝經(효경)을 짓도록 했다.

자연히 孝에 관한 逸話(일화)도 많다. 한 번은 참외밭을 매다가 뿌리를 뽑았다고 하여 아버지 曾晳(증석)으로부터 몽둥이로 맞아 까무러치고 말았다. 그러나 한참만에 깨어난 曾子는 얼굴에 웃는 빛을 띠면서 말했다.

“너무 힘껏 훈계(訓戒)하셔서 혹 병환(病患)이나 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고는 자기 방에 들어가 거문고를 타면서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孔子는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야단쳤다. 그러다 정말 죽었다면 이 보다 더한 불효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孔子의 孝는 한 차원 더 높은 셈이다.

후에 齊(제)나라에서 그를 불렀지만 늙은 부모를 모시고 있다면서 거절했는가 하면 아내가 부모의 조석 상에 덜 익힌 나물을 올렸다고 해서 쫓아내고는 평생을 獨身(독신)으로 지내기도 했다. 물론 極端的인 孝의 예라 할 수 있겠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sw 478@yahoo.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