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대리모 출산 부추길 우려”…의사윤리지침 반발

  • 입력 2001년 11월 16일 18시 26분


대한의사협회가 15일 발표한 의사윤리지침 내용 중 낙태나 금전거래가 없는 대리모 출산을 인정하는 조항 등은 현행법이나 현실을 너무 무시한 채 의사측 처지만 고려한 것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의협은 의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내부지침’이라고 주장하지만 성격상 ‘내규’에 가까워 보다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마땅했다는 지적이 많다. 또 의협의 주장대로 낙태 등 불법 의료행위가 현실적으로 만연돼 이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었다면 지침을 통해 의견을 전하기보다 행정부나 국회를 통한 입법화에 나서야 했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재천(崔載千) 변호사는 “의사의 치료행위 하나 하나가 국민에게 직·간접적 영향을 크게 미치는 만큼 의사윤리지침을 고칠 때에는 법 또는 사회현실과 충돌할 위험성은 없는 지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형법상 규제 조항은 없지만 민법상 모권이 대리모에게 돌아가는 ‘대리모 출산 인정’은 모권 분쟁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구나 최근 2∼3년간 친인척 대신 가난한 여성이나 중국 교포 등이 돈을 목적으로 대리모로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어 ‘비인도적 행위’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가족법은 ‘출산한 여성에게 모권이 있다’고 명시, 법적 모권은 대리모에게 있다. 하지만 대리모 출산의 경우 의뢰자의 요구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 아이는 의뢰자가 양육하게 되어 모권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신현호(申鉉昊) 변호사는 “시험관 수정을 거친 대리모 시술 중 30%는 중국 교포 여성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표면화된 적은 없지만 태어난 아기가 기형일 경우 대리모가 출산을 전제로 한 돈을 받지 못하거나 아기 양육을 떠맡아야 할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의 불임부부는 대략 100만쌍. 이 중 자궁 이상으로 임신이 불가능한 경우 유일한 희망은 대리모다. 대리모 출산 건수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불임전문병원별로 한 해 적게는 3, 4건, 많게는 10여건으로 전국적으로 70∼80여건이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대 의대 김석현(金石鉉) 교수는 “의사윤리지침대로 현실을 인정해 대가성 대리모를 금지해도 불임부부는 외국에 나가 대리모를 선택할 수 있다”며 “윤리지침 제정은 종교계 등 각 사회계층의 공감대를 토대로 현행법의 개정작업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