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관문화훈장 받은 지관스님 "학승의 길 한평생 후회없다"

  • 입력 2001년 11월 15일 18시 35분


불교 지성으로 손꼽히는 전 동국대 총장 지관(智冠·69·가산불교문화연구원장)스님이 지난달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때 활약한 백용성 스님에게 사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된 적은 있지만 살아서 은관 이상의 문화훈장을 받은 승려는 그가 처음이다.

내달 9일 고희를 맞는 스님을 서울 동숭동 가산불교문화연구원으로 찾았을 때 그는 ‘가산불교대사림’ 편찬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한국불교사에서 최초의 ‘한국불교대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가산불교대사림’은 모두 15권으로 출간될 예정인데 현재 4권까지 나왔다. 이 사전 편찬 작업은 이번에 그가 은관문화훈장을 받게 된 업적 가운데 하나.

가산불교문화원은 얼마전 1700년 한국불교사의 불교 지성 33인을 선정한 적이 있다. 지관스님에게 ‘그중에서도 최고 지성을 꼽는다면 누구냐’고 묻자 그는 망설임없이 원효를 꼽는다.

“한국불교사에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를 들라면 불보는 석굴암 본존불, 법보는 해인사 팔만대장경, 승보는 원효스님이지. 원효의 깊고 심오한 사상과 쉽고 유장한 글솜씨는 그 누구도 쫓아가지 못했어. 불교 전래 200년만에 이런 인물이 나온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야.”

지관 스님은 동국역경원장 월운(月雲)스님과 함께 운허(耘虛)스님에게서 경을 배웠다. 대처승을 몰아내고 비구승 중심으로 조계종을 새로 세우던 시기인 1959년부터 해인사 강원의 강사를 맡았다. 은사인 자운(慈雲)스님이 ‘강사 모셔올 때까지만 잠깐 맡으라’고 한 것이 해인사 주지가 되던 69년까지 이어졌다. 그는 이때 강원에서 배우는 기본과목 등에 대한 주해서를 내 전통강원의 체계를 확립했다.

그는 15세에 출가해 3년쯤 지났을 때 ‘앞으로 뭘 할까’ 고민하며 통도사 극락전에서 경(經) 율(律) 선(禪)이라고 각각 쓴 세장의 종이를 놓고 매일 108배를 올렸다. 어느날 작심하고 종이 한장을 골랐을 때 손에 들린 것은 선이었다.

정작 그는 선이 아닌 경의 길을 걸어왔지만 후회는 없다. “사교입선(捨敎入禪)은 경 율 다 배우고, 그것 버리고 선에 든다는 뜻이지, 버릴 것도 없이 선에 드는 것이 아니야. 조선시대에는 승려들의 사회활동이 미약할 수 밖에 없어 선 위주로 승가가 꾸려져 왔지만 신라 고려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어.”

그는 75년 동국대로 자리를 옮겨 학승으로서 두 번째 시기를 시작했다. 86년 비구승으로서는 처음 동국대 총장이 됐다. ‘조계종사’ 등의 저술을 통해 종단교단사를 정리한 것은 바로 이 시기다.

총장직을 끝내고 91년 현재의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설립했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시절의 업적으로는 ‘가산불교대사림’과 함께 ‘한국고문비문총집’을 빼놓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때 일본인에 의해 신라부터 고려까지 고승들의 비문은 정리돼 있다. 그는 조선이후 근현대까지 332기에 달하는 고승 비석의 금석문을 모두 모으고 역주를 달아 조선이후 불교연구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문화훈장을 받은 데 대해 “과거를 돌아보면 잘못했던 것만 보이는데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며 “죽기전에 사전작업을 마쳐야 하는데 나이가 들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의 문화훈장 축하법회가 23일 오후 6시반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