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VS리뷰]이문열 단편집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

  • 입력 2001년 10월 12일 18시 33분


◇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이문열 소설집/376쪽 9000원 아침나라

◆ 이화여대 국문과교수 이인화의 리뷰

이문열 단편집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는 방외인(方外人) 의식의 현대적 표현을 보여준다. 자신의 시대와 불화한 나머지 세상의 바깥으로 물러나기를 원하는 방외인 의식은 멀리 김시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소설의 전통적인 작가의식이다.

이것은 지식인이 자기 일신의 거취를 결정하는 유가적 행동 논리인 출처론(出處論)과 연결된다.

자기의 능력을 다해 세계를 해석하고 그 해석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다. 그러나 해석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지식인은 정신적인 패배감을 피할 수 없다. 애초에 세계가 창조된 것은 인간의 정신적 요구에 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세상은 본래부터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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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은 오랜 세월 조선조 사대부들의 삶에 영감을 주었던 방외인의 존재를 통해 이같은 현대적 딜레머를 다루고 있다.

‘달아난 악령’에서 이문열은 80년대 대학가에 유포된 좌파 이념이 90년대에 자라나 한 가정을 파멸로 몰아넣는 과정을 여자중학교 교사의 행적을 통해 묘사한다. 주인공 이상현은 자신의 신념으로 제자들을 세뇌시켜 그들을 ‘비극적 소모’로 이끌어간다. 몇 년 후 시행착오를 깨달은 그가 택하는 것은 세상을 버리고 스스로가 만든 유형지로 들어가는 방외인의 길이다.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에서는 작가 자신이 방외인이 된다. 언론 탄압을 둘러싼 이념 공방의 소용돌이에서 상심한 작가는 27년 전에 떠난 고향에 집을 짓고 은거한다. 작가의 은거는 현대판 귀거래사(歸去來辭)로 읽혀지는 의고체 문장에 의해 당대의 민감한 갈등에 대한 미학적 거리를 획득한다.

불행히도 이같은 방외인 의식은 완결된 정신세계를 이루지 못한다. 고향으로의 은거는 자신의 소신이 배척받았다는 울분에서 촉발되었기에 역설적으로 방내(方內)의 세계에 대해 더 강한 집착을 내장하고 있는 것이다.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에서 주인공이 다시 고향을 떠나는 것은 이같은 이중적인 심리의 정직한 고백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세상 바깥(方外)은 어디인가. ‘하늘길’은 식구가 차례로 굶어 죽는 극적인 상황을 겪은 소년이 인간의 운명에 대한 물음을 안고 하늘을 찾아가는 우화를 통해 이같은 문제를 추구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옥황상제를 만나고 해답을 듣지만 소설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5년 후 ‘내가 갔던 것이 과연 진짜 하늘이었는가’ 하는 의문을 품고 다시 정처없는 길을 떠나는 것이다.

이같은 결말은 이문열의 방외인의식이 시류에 의해 촉발된 즉자적 반응이 아니라 영원히 ‘세상 바깥을 꿈꾸면서 세상 안을 방황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한 질문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인화(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 문학평론가 방민호의 리뷰

어느 때인가부터 이문열을 생각하면 그의 ‘어두운 열정’이 바로 곁에 느껴져 마음이 언짢아지곤 했다. 그러면서 특히 90년대 이후의 그의 소설이라는 것이, 또 그의 문장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가 야만성을 벗고 보다 상식적인 사회로 나아가는데 있어 치러내야 할 ‘비극적 소모’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한층 더 우울해지곤 했다.

이번에 간행된 창작집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는 몇 년 전에 엮은 ‘아우와의 만남’이나 장편 ‘선택’의 뒤를 잇는 노골적인 ‘경향소설’들이다. 왜 그는 그런 작품을 써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흔히 신경향파를 떠올리며 경향이란 좌파문학에나 쓸 수 있는 말로 생각하겠으나 그 반대편에도 경향문학이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이번 창작집은 문학으로서는 ‘미달’이며 ‘프로파간다’로서는 의미가 있다. 그의 작품들에 담긴 노골적인 정치성이 부담스럽다. 그 방향 때문이 아니라 그 직접성 때문에.

‘그 여름의 자화상’은 지극히 작은 소품인데, 그런 간단한 회상기로 친일의 문제, 또는 일제에 병합 당하고 자력으로 해방을 쟁취하지 못한 민족적 문제가 취급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최근에 나는 미당 운운의 ‘친일문학론’들의 퇴행성 논의에 지쳐 버렸지만 ‘그 여름의 자화상’의 냉소도 조야함을 전혀 벗었다고 보기 어렵다.

‘전야(前夜),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은 작품집 속에서 두드러진 작품이지만 IMF라는 일종의 파국적 국면과 남녀의 이별을 연결짓는 이야기들은 채만식의 ‘냉동어’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그는 1940년에 신체제론을 배경으로 중견 작가와 일본 여인의 이별을 지어냈으니 독자들로서는 찾아 비교할 만할 것이다.

‘달아난 악령’은 이광수의 ‘혁명가의 아내’에 비견될 만한 냉소가 특징이다. 그 내용과 반대로 체제의 수족이 되어 여성노동자를 고문하는 형사의 심리를 추적하는 작품이 있다고 해도 방식이 그와 같아서는 악의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쉽다.

‘김씨의 개인전’의 김창경은 조각가의 ‘조수’ 노릇을 하다 스스로 예술을 하겠노라고 선언하고 종국에는 예술가가 되지 못한 자기를 깨닫는다는 것인데, 그것으로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예술은 천재의 직분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그 주제가 너무 진부하다.

책 제목과 같은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는 자전적인 단편인데, 나는 그것이 일종의 사소설로 씌어졌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의미가 있다. 그가 전개하는 오늘의 ‘투쟁’이 그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을 가능케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방민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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