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주변 개발사업, 중단-강행 끝없는 논란

  • 입력 2001년 8월 22일 18시 38분


서울 덕수궁 전경. 주변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문화재 경관이 훼손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서울 덕수궁 전경. 주변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문화재 경관이 훼손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개발 사업이 문화재 주변 경관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서울 정동 덕수궁(사적 124호) 옆 캐나다대사관 신축 계획, 울산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국보 285,147호) 사적공원 조성 계획, 경기 수원 화성(사적 3호·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인근 초고층 아파트 신축 계획 등이 대표적 사례. 자치단체는 사업을 강행하고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맞서고 있다.

서울시는 6월말 덕수궁 옆의 캐나다대사관 신축부지 용도변경을 허용해 9층짜리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예정지는 덕수궁에서 200m, 정동교회(사적 256호)에서160m, 옛 러시아 공사관(사적 253호)에서 92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해 “덕수궁 주변의 문화 경관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문화연대 겨레문화답사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최근 ‘정동지역 역사경관 지키기 위한 시민대책위’를 만들었다. 문화연대의 김성한 간사는 “서울시는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하지만 용도변경은 일종의 특혜이자 명백한 문화재 훼손”이라면서 서울시에 용도변경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울산시가 추진 중인 반구대 천전리 암각화 선사유적공원 조성 사업은 지난해 가을 이래 1년 가까이 논란을 빚고 있다. 전국의 고고학 역사학 관련 학회의 반대 운동으로까지 이어졌으나 울산시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현재는 진입로 공사 예정지에서 7∼8세기 토기조각과 8세기경 가마터 등을 확인해 일단 지표조사에 들어가기로 한 상태.

수원에서도 화성 옆 800m 떨어진 곳에 30층짜리 고층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놓고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 수원환경운동센터는 수원시가 아파트 건설을 강행하려 하자 “아파트 건설 허가가 날 경우, 화성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철회를 유네스코에 요청하겠다”는 성명을 최근 발표했다.

그러나 자치단체들은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개발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사적 등 국가지정문화재 500m 밖에서 이뤄지는 건축행위는 제재할 수 없다.

500m 이내에서의 건축행위에 대해서는 문화재 훼손 여부를 검토해 자치단체 조례에 따르도록 돼 있으나 이 규정이 강제규정이 아니어서 자치단체가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500m 이내의 건축 행위를 금지할 경우, 막대한 재산권 침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법을 강화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무리다.

전호태 울산대 교수는 “이제는 문화 유적 자체가 아니라 주변 경관까지 보존해야 한다. 한국 현실에서 법에만 의존할 수 없다. 그래서 시민운동이 중요하다. 자치단체 관계자와 시민 전문가들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문화재 주변 경관을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의 소극적인 대처에 대한 지적도 있다. 한 고고학자는 “문화재청은 현행법에 관계 없이 문화재 주변의 건축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