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도서 교환 합의]'등가교환' 나쁜 선례 될 수도

  • 입력 2001년 7월 26일 18시 39분


한국과 프랑스는 25일 프랑스가 보관하고 있는 외규장각 의궤(儀軌) 도서 297권 가운데 유일본(한국측 추정 64권)과 한국이 소장하고 있는 복본(複本)을 ‘장기 대여’ 방식으로 교환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외규장각 도서 문제 해결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양측은 9월부터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한국 전문가 소수와 프랑스 전문가 2명으로 구성된 공동 실사팀이 외규장각 도서 297권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실사 작업에 들어가되 유일본부터 먼저 조사하기로 했다. 양측은 또 프랑스 소장본 가운데 조선시대 국왕 열람용인 어람용(御覽用) 의궤와 한국이 소장하고 있는 비어람용(非御覽用) 의궤를 교환한다는데도 합의했다. 프랑스는 그간 불허해왔던 한국 역사학자 등 전문가들의 외규장각 도서 열람도 허용하기로 했다.

양측이 ‘유일본 우선 교환’을 문서화한 것은 전세계에 한 권밖에 없는 외규장각 도서들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텄다는 의미를 갖는다. 유일본은 한국에 같은 책이 없기 때문에 같은 시기(1630∼1857년)에 제작된 외규장각 의궤 가운데 복본이 여럿 있는 다른 도서와 교환된다.

프랑스가 보관중인 어람용 의궤와 한국에 있는 비어람용 복본을 교환하기로 한 것도 의미가 있다. 어람용 의궤의 문화재적 가치는 비어람용에 비해 훨씬 크다.

그러나 협상의 뒷맛이 개운치만은 않다. 프랑스는 지난해 10월 자국에서 전시 중이던 독일 라우재단 소유의 인상파 화가 폴 세잔의 그림을 ‘약탈 문화재’라는 이유로 압류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는 ‘등가 교환’을 요구, 관철시킨 것이다. 게다가 우리측 문화재와 교환하는 방식은 프랑스의 약탈행위를 합법화한다는 측면도 있어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 7만여점의 반환협상에도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또 한국의 문화재 보호법은 전시 목적 이외의 문화재 해외 반출을 금지하고, 전시라 해도 4년 이상은 불허하고 있다.

한국측 수석대표인 한상진(韓相震)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도 “실사 진행상황을 지켜봐야 하지만 의궤 한 권의 무게와 부피가 한 사람이 겨우 들 정도인 만큼 외규장각 도서가 실제로 한국에 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박제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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