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기말고사 이젠 '물'로 보지 마"…고교 '내신 거품빼기' 비상

  • 입력 2001년 7월 12일 18시 35분


《서울 문일고 3학년생 박모군(19)은 10일 시작된 기말고사 준비에 진땀을 흘렸다. 중간고사와 달리 기말고사에서 어려운 1점짜리 문제 5, 6개를 출제하겠다는 학교의 방침 때문이었다. 박군은 “교과서에 없는 유형의 수학 문제까지 풀며 준비했지만 시험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 은광여고 2학년생 박모양(18)은 3일 기말고사 수학시험에서 복잡한 계산식이 필요한 문제가 나와 깜짝 놀랐다. 수학 만점자가 100여명이 넘을 정도로 쉬웠던 중간고사와는 전혀 딴판이었던 것.》

서울대가 대학입시에서 학교생활기록부의 교과목 성적(내신 성적)을 평가할 때 100명 가운데 1등이 10명이라면 이들을 중간석차인 5등으로 인정하는 등 대학들이 내신 성적 평가를 강화하자 고교들은 앞다퉈 변별력이 높은 주관식 문제로 시험의 난이도를 높이고 있다.

고교들이 올 중간고사 때까지 ‘성적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다.

▽어려워진 학교시험〓서울 S여고는 한두 문제에 그쳤던 서술형 주관식 문제의 비율을 30%로 올렸다. 비평준화 학교인 경기 일산 신도시 백석고도 3학년 영어시험에서 글의 흐름을 묻는 주관식 문제를 20% 출제했으며 다른 과목도 주관식 문제를 20∼30% 가량 제시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D학원 김모 원장(40)은 “최근 학교 시험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면서 “어려운 문제를 함께 풀면서 기말고사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의 내신 불신〓일선 고교들이 대학 입시에서 재학생들이 더 유리하도록 ‘성적 부풀리기’를 한 결과 대학들은 내신 성적을 그대로 믿지 못해 자체적으로 내신 성적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대는 이미 2002학년도 입시부터 동석차가 아닌 중간석차를 사용한다고 발표했으며 고려대도 1학기 수시모집에서 동석차를 인정하지 않는 등 대학마다 평가방법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고려대 김승권(金勝權) 입학관리실장은 “앞으로 각 고교에 내신성적 분포표를 제출하도록 요구해 성적 관리실태를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연세대는 장기적으로 각 고교를 방문해 교육 실태를 점검할 계획이다.

지난해 학생부 성적만으로 1차 전형을 치렀던 육해공군 사관학교는 올해부터 서류전형 대신 자체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서울지역 특목고의 한 교사는 “동석차를 줄이지 않으면 주요 대학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신성적 딜레마〓일선 고교는 ‘내신 변별력 확보’와 ‘평균성적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고민에 빠져 있다. 주요 대학들이 동석차를 인정하지 않지만 여전히 많은 대학들이 ‘수우미양가’ 등으로 내신 성적을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고교는 쉬운 문제에 5, 6점, 어려운 문제에 1, 2점을 주는 ‘역배점’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수’를 받으면서도 상위권 학생들의 석차를 벌리겠다는 것.

서울 H고 신모 교사는 “평균 점수를 80점대로 유지하면서 상위권 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도우려면 ‘역배점’ 방식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S고 김모 교사는 “역배점은 ‘내신 부풀리기’를 위한 것”이라며 “어려운 문제를 출제할 때 출제 포인트를 설명하거나 교과 성적의 20∼30%를 차지하는 수행평가 점수를 후하게 줘 평균점수를 올리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용기자>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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