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고학력-고소득 엘리트층에 인기

  • 입력 2001년 6월 25일 18시 50분


"퍽…퍽… 퍼벅퍽….”

23일 오후 1시 서울 성북구 종암2동 변정일 복싱클럽. 영화 ‘록키’의 주제음악 리듬에 맞춰 백산한의원 이민영 원장(44)이 샌드백을 치고 있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고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다. 이원장은 일주일에 한두 번 체육관을 찾아 주먹에 스트레스를 실어 날린다.

“사는 게 힘들거나 미운 사람이 생겨 마음이 괴로울 때 샌드백을 30분 정도 두드리고 나면 왠지 모를 힘이 솟고 모든 것이 다 용서된다.”

90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싱을 시작한 이원장의 복싱 예찬론이다.

“왼쪽으로 돌아. 왼쪽으로.”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대흥동 라이온스 복싱체육관. 서울시립교향악단 바순 수석주자인 최중원씨(50)가 스파링을 하고 있었다. 최씨를 가르치는 마수년 관장(50)은 상대에게 거리를 주지 말 것을 연신 주문했다.

“죽을 때까지 복싱을 즐길 생각이다.”

태권도 스킨스쿠버 등을 두루 섭렵한 만능스포츠맨 최씨의 각오다.

‘헝그리 스포츠’로 알려진 복싱이 최근 일부 교수 의사 펀드매니저 등 고학력 고소득 엘리트층인 ‘골드칼라’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유럽 등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시작된 현상. 특히 영국에서는 14일 전문직 종사자만이 출전하는 이색 경기가 열릴 정도로 복싱이 ‘엘리트 스포츠’로 자리를 굳혔다.

◇98년 '복싱 에어로빅'으로 붐

▽복싱 에어로빅 등장 이후〓골드칼라 전문직 종사자들이 서서히 복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98년 ‘복싱 에어로빅’이 등장하면서부터.

“당시만 해도 복싱 도장에서 교수 의사 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복싱 에어로빅을 개발해 복싱의 대중화를 선도한 WBC 밴텀급챔피언 출신의 변정일 원장(35)의 얘기다. 이 체육관에는 128명의 남자 회원 중 화이트칼라가 56명. 이 중 교수 의사 사업가 펀드매니저 등 골드칼라가 절반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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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스 복싱체육관은 관원 100명 중 87명이 남자. 서울대 연세대 홍익대 명지대 한양대 등 교수만 10여명에 달해 ‘교수 체육관’으로 유명하다.

◇"팽팽한 긴장감을 즐긴다"

▽“창피하니까 제발”〓복싱을 즐기는 엘리트 중에는 ‘실력’을 검증 받고 싶어 경기에까지 나가는 ‘열성파’들도 많다. 치과의사인 최모씨(47)는 지난해 9월 프로복싱대회에 출전해 아깝게 판정패했다. 프로와 아마를 합쳐 통산 전적 4전4패를 기록하고 있는 최교수는 “창피하니까 제발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면서도 권투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토로했다.

체육관

위치

전화번호(02)

변정일복싱클럽

성북구 종암2동

911-2747

라이온스체육관

마포구 대흥동

703-7908

숭민체육관

광진구 군자동

467-6980

풍산체육관

용산구 한강로2가

792-3653

중앙체육관

중구 신당1동

2232-0248

신도체육관

동대문구 전농동

967-9928

부산 서구 충무동 한성체육관에 다니는 동아대 사회학과 한석정 교수(48)는 96년 봄 부산 신인선수권대회에서 웰터급으로 출전해 부전승이긴 하지만 우승한 경험까지 있다. 30년 동안 야구를 즐겨온 한교수는 “사각의 링에서 힘과 힘이 맞부딪칠 때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도 한방에 "싹~"

▽매력〓복싱의 무슨 매력이 골드칼라 전문직 종사자에게 어필하는 것일까? 우선 복싱은 언제든지 필요할 때 즐길 수 있어 ‘시(時)테크’하는 전문직 종사자에게 어울린다.

또 대부분 앉아서 일하기 때문에 아랫배가 많이 나오고 하체가 부실한 골드칼라에게 특히 효과적이다.

시향의 최중원씨는 “아랫배가 쏙 들어간 것은 물론 대학생 시절 몸무게를 유지해 친구들이 놀란다. 특히 다른 운동에 비해 심폐기능이 강화돼 바순 연주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정신적 스트레스 해소에도 탁월하다.

“사회가 전문화되고 안정되면 될수록 고소득 전문가들이 분노, 스트레스를 솔직히 표현할 기회가 적어진다. 기껏해야 운동경기를 보면서 대리 만족하는 정도다. 자기 표현을 절제하는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억압하는데 이들에게 복싱 같은 격렬한 운동이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적일 수 있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 이만홍 교수의 해석이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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