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미디어 교육- TV보며 토론, 감상문 "바보상자라뇨?"

  • 입력 2001년 6월 3일 18시 44분


◇미디어로 학습하기

경기 안산시 매화초등학교 5학년 송설아양(11)은 아버지와 함께 TV 보는 게 취미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TV 좀 그만 보고 공부해라” “애들이 볼 프로가 아니다”는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대신 TV를 보며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한다.

남녀간 삼각관계를 그린 드라마를 볼 때 부녀간에 이런 대화가 오고 간다.

“설아야, 넌 저 남자가 어떤 여자를 선택하면 좋겠니?”

“송혜교.”

“그럼 몸이 아픈 약혼녀는 어떻게 하고?”

“사랑하지 않으니까 결국 불행해질 거예요.”

프로그램이 자연 다큐멘터리로 바뀌면 “개미가 왜 사나워졌을까?” “적정 마릿수를 초과했기 때문일 거야. 미국작가 펄벅의 ‘대지’에서도 메뚜기들이 저랬거든” 식으로 대화 소재도 달라진다. 가끔은 사전을 뒤적이거나 텃밭에서 개미를 잡아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궁금증을 즉석에서 풀기도 한다.

“애들이 TV 보는 걸 어떻게 막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덜 해로울까 고민하는 게 현실적이지요. TV도 특정 프로그램만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보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아버지 송환웅씨·54·입시학원 수학강사)

요람에서 무덤 직전까지 TV를 ‘끼고 살아야 하는’ 영상 시대다. 보다못한 부모들은 TV를 치워버리겠다고 윽박질러보기도 한다. 하지만 못하게 하면 아이들은 반발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TV 프로그램이 주요 이야깃거리인 친구들로부터 소외당할 가능성도 있다.

외국의 경우 ‘똑똑한 수용자’로 키우기 위해 미디어를 적극적인 교육 도구로 활용한다.

영국은 97년 미디어 교과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가르치고 있다. 드라마 광고 영화 등을 보고 미디어 시청일기를 쓰고 학년이 올라가면 텍스트 분석 제작 실습까지 한다.

미국도 70년대 후반부터 폭력 장면이 많은 TV로부터 청소년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비판적 TV시청 기술’ 프로그램을 개발해 일선 학교에 보급했다.

94년에는 각 주정부가 정규 교과 과정에 미디어 교육을 포함시키도록 법까지 만들었다.

이스라엘 영재교육 기관도 TV나 신문의 뉴스를 비판적으로 보고 듣고 영화를 소재로 토론하는 등 미디어를 요긴한 학습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학교에서 미디어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민간단체들이 청소년이나 학부모들을 위한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빈자리를 메우는 정도다.

◇'참교육 학부모회' TV 시청 6계명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TV 시청 습관을 갖게 하려면 6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①TV 편성표를 보고 꼭 필요한 프로그램만 보게 한다〓무작정 TV를 켜놓지 말고 계획적 시청을 유도한다.

②시청 규칙을 정한다〓하루 평균 시청시간이나 TV 끄는 날, 프로그램 종류별 시청시간 배분 등 아이 개인이나 가족의 시청 규칙을 만든다.

③어린이 시청지도에 온 식구가 노력한다〓부모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에 들어오자마자 TV부터 켜면 아이도 따라하게 된다. 아이에게만 강요하지 말고 온 가족이 올바른 시청 습관을 갖도록 한다.

④TV 끄는 날을 정한다〓하루 정도 TV 끄는 날을 정해 가족의 태도 변화를 관찰한다. TV를 껐을 때 우리 가족은 어떤 일을 하는가, 예전과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TV가 우리 식구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은 무엇일까 등등을 이야기해 본다.

⑤TV 시청일기를 쓰게 한다〓프로그램 제목과 종류, 시청시간, 보고 난 후의 느낌과 평가, TV 볼 때의 자세 등을 일기로 쓰게 한다. 이를 통해 어린이 스스로 시청 습관을 점검한다.

⑥수용 능력을 길러준다〓어린이 스스로 좋은 프로그램을 고를 수 있는 안목과 이를 활용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TV 감상문을 쓰거나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적어 방송사에 편지를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울 미양초등교 '미디어부'

서울 강북구 미아1동 미양초등학교에는 ‘미디어부’라는 동아리가 있다.

4∼6학년 20여명의 학생은 매주 월요일 수업이 끝난 후 교실에 모여 담당 교사 정연실씨(26)의 지도 아래 TV 프로그램을 모니터하고 가요나 영화의 줄거리를 고쳐 써보거나 간단한 영상물을 제작한다. 정교사는 “TV 신문 잡지 영화 비디오 컴퓨터게임 인터넷 등 다양한 미디어의 특성과 이를 활용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활동 목표”라고 설명했다.

다른 초등학교에서도 시도해 볼 만한 이 학교 미디어부의 활동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가사 들여다보기〓유행하는 가요를 듣고 가사 속 문제점을 짚어 본다. “터보의 ‘사이버 러버’는 만나지도 않은 여자를 벌써 사랑하게 된다는 점이 이상하다” “박지윤의 ‘성인식’에서 ‘이제 나 여자로 태어났죠’라고 했는데 원래 여자이면서 왜 이런 표현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어린이다운’ 의문이 나왔다.

▽내가 만드는 노래〓이해할 수 없는 가사를 따라 부르기보다 직접 가사를 붙여본다. 조성모의 ‘가시나무’를 “내 밥엔 콩이 너무도 많아…”로 바꿔 불렀다.

▽뮤직 비디오 모니터〓뮤직비디오를 감상한 후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고 내가 만약 감독이라면 어떻게 고치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눈다.

▽시트콤 쇼 오락 프로그램 모니터〓녹화된 TV 프로그램을 장르별로 시청한 후 줄거리와 주제 장르별 특징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치고 싶은 부분에 대한 의견도 교환한다.

▽고정관념 찾아내기〓TV 드라마나 광고 등을 본 뒤 스테레오타입을 찾아내고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알아본다.

▽TV 광고 모니터〓TV 광고를 보고 거짓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찾아보고 지혜로운 소비자가 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습〓‘타잔’ 등 애니메이션을 보고 뒷이야기를 이어서 만들어본다. 공익광고 스톱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고 방송사를 견학한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