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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3월 29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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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사는 1932년 1월 8일 일본 도쿄(東京)의 황궁 밖에서 열병식을 마치고 황궁으로 돌아가던 히로히토(裕仁) 천황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체포돼 순국했다.
최서면(崔書勉) 국제한국연구원장은 최근 발족한 이봉창 의사 장학회(회장 장충식·張忠植 전한적총재)의 의뢰로 일본에서 이 의사 관련 수사기록을 조사하다 이 사실을 밝혀냈다.
1932년 2월 12일에 작성된 ‘제7회 심문조서’에는 이 의사가 상하이에서 거사를 위해 일본으로 향하기 전 ‘백정선(白貞善)’으로부터 8원80전짜리 고급 손목시계를 받았다고 진술한 내용이 있다. ‘백정선’은 김 주석의 가명이었으나 당시 일본 경찰은 이를 몰랐다.
최 원장은 “당시 8원80전이란 돈은 사무실이 없었던 것은 물론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던 임시정부의 형편을 생각하면 거금이었다”면서 “이는 거사에 대한 김 주석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백범일지에는 한인애국단원으로 1932년 4월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일본군 수뇌부를 폭탄으로 척결했던 윤봉길(尹奉吉) 의사가 거사를 앞두고 백범의 권유로 고급 손목시계를 샀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같은 점으로 미루어 백범은 고급시계에 말쑥한 양복 차림을 하면 일제의 검문을 피해 목표에 접근하기 쉬워 거사가 용이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